우리 얘기 좀 해_화요일 오후 세 시의 오븐_250520
“그럼, 왜 우는 건데?” 엄마가 나에게 물었어.
얼마 전 동료, 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거로, 더 과거로 헤엄치던 내게 문득 떠오른 어떤 장면이야.
무언가 중요한 것을 쓰거나 말해야 할 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말을 아끼게 돼. 눈사람을 만들 듯, 이리저리 굴리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처음부터 이걸 인지하고 있었던 건 아닌데, 입 밖으로 무언가를 꺼낼 때마다 마음속에 떠오르던 것들이 하나씩 둘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랬어.
그날도 그랬거든. 라테 아트를 하는 중에 받은 메시지에, 피처를 잘못 기울였고 그렇게 바닥에 우유를 부어버렸지. 수가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묻길래, 다음 글쓰기 주제를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는 중이라고 대답했어. 늘 그랬듯 말은 아끼며, 보물찾기하듯 내 마음 여기저기를 들춰보기에 바빴거든. 더 묻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대답만 해버렸지. 사실은 유독 쓰기 싫었거든. 나를 많이 드러내지 않으면서 글을 쓰려면 어떤 걸 고를지 고민하느라 바빴던 거야, 난.
그러다 이번엔 생각지도 못한 장면과 맞닥뜨리게 되었어. 얼마 전 오랜 투병 끝에 친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돌아온 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그만 슬퍼해야 할아버지가 편하게 가시니까, 울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부모님께서 그렇게 슬퍼하니까, 더 울 수 없었어요.”
시야가 뿌옇게 변했어. 샌드위치용 빵을 프랩하느라 빵 속을 채우고 있었는데.
나도 놀라고, 수도 놀랐지. 빵에 눈물이 떨어질까 봐 얼른 눈앞에 건네진 냅킨으로 닦아냈어.
“다른 이야기해야겠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요. 매번 그 소리더라. 괜찮은데 왜 울어요.”
그때였지.
“그럼, 왜 우는 건데?” 무언가 분한 듯, 억울한 듯, 서러운 듯 꺽꺽 울던 어린 나에게 엄마가 물었어.
“눈물이 난다는 건, 이 상황이 괜찮은 게 아니라는 거잖아. 왜 눈물이 나는지 잘 생각해 봐. 지금 니 속에, 말을 안 하고 있는 게 있으니까, 눈물이 나는 거 아냐.”
입 밖으로 나오는 괜찮다는 말과 달리, 눈에선 계속해서 눈물이 줄줄 흘렀고, 말을 이어 나갈 수도 없게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어. 그런 나를 엄마는 마주 앉아서 기다려주었고, 다행히 차츰 잦아들었어. 제대로 숨을 쉬게 되자,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말할 수 있었어.
잊었던 기억을 문득 불러일으키는 말. 이 장면도 언젠가, 다른 말에 떠올리게 되는 날이 있겠지,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어.
“그러게요. 괜찮다면서 왜 눈물이 날까요?”
‘… 그만 슬퍼해야 할아버지가 편하게 가신다고 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슬퍼요. 나 때문에 할아버지가 좋은 곳 못 가셨으면 어떡하지 싶고…, 그냥, 그때 그 상황이 떠오르니까 속상해요. 탓할 대상도 없고. 코로나 때문에 면회 한 번 못 하고 할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다는 게 원망스러워요. 할아버지 댁에 안부 전화를 드려도 그때마다 안 계신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한 것이 후회되고. 유독 이뻐한 넷째 딸인 우리 엄마를 못 보고 가신 게 속상해요. 우리 엄만 아버지가 얼마나 그리울까요?’
사람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더 편하게 느끼고, 그걸 선택한대. 이런 게 마음에 남아 괴로웠고, 말수가 줄어버린 엄마를 살피느라 내 슬픔은 뒤로 두었다는 걸 처음 털어놓으면, 그 경험이 내게 다른 무언가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알지. 그렇지만 처음인 것, 새로운 것은 익숙함을 벗어나는 거니까, 나는 ‘안전’을 선택함으로써 나를 지키고 싶거든.
“슬프다고 해요, 그냥. 진짜 괜찮을 때는 이 텐션이 아니잖아.”
안 괜찮아도 괜찮대. 그래서 이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선택했어, 처음으로.
감정은 내가 아니라고 하잖아. 그런데 내가 외면한 내 감정은 나중에, 무방비일 때 돌아오는 것 같아. 생각해 보면, 이렇게 터뜨릴 기회가 전에도 있었는데, 그때도 말하지 않고 괜찮다며 일어섰거든. 나약해진 순간을 들킨 것 같아서 싫었어. 내가 날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도 싫고. 그냥… 불안하달까.
“코로나 걸린 후에, 보건소에서 후유증 관리한다고 진료받은 적 있거든요. 그때 상담 선생님도 만나야 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 인사하고 의자에 앉았거든요? 그때 선생님께서도 제게 인사를 하셨는데, 그때도 지금 같았어요. 별말씀 안 하셨거든요? 어서 오세요. 후유증 때문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라고요.”
그때도 울었지. 그때 속에 있는 말 못 하고 괜찮다며 일어서는 나에게, 선생님께선 콩나물 키우기 키트를 손에 쥐여주셨거든. 근데 그땐 무언가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 키우던 선인장이 죽어서, 콩나물도 죽게 될까 봐.
“그럼, 다음 주에는 이거 써보면 되겠네요. ‘괜찮다’의 의미.”
괜찮다는 말. 아직 나를 드러내 보일 만큼의 관계가 아닌데, 굳이 속속들이 다 말할 수 없잖아? 사회생활용 ‘괜찮아요’ 인격이랄까? 또, 나는 내가 예민하다는 걸 알고 있고, 그런 나를 내가 가장 많이 이해해 주고 싶어. 그래서 나를 들여다보는데 이미 많은 시간을 쓰고 있고. 나는 내가 가장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타인은 내가 얼마나 어렵겠어. 난 무던한 사람이고 싶었어.
그렇지만 요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렇게 드러내고 변하는 게 불안하고 두렵지만. 내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는 괜찮지 않아.
여전히 멍들어있고 사무치게 그리워.
나는 괜찮지 않아.
그래서 내 이야기를 써보기로 결심했어.
어떤 사건을 겪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려는 편이거든? 당장에 안 되는 건 나중에라도. 그렇지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렇게 느낄 수는 없을 거라는 걸 알아. 그러니, 내 마음이 괜찮지 않다는 걸 처음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어. 나를 봐주는 사람들에겐, 거짓말하지 않고.
특히 나 자신에게도.
그게 두려운 건, 그만큼 내게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