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_씨앗, 그림자 토끼, 눈동자 속 아이

자립_화요일 오후 세 시의 오븐_250916

by beautiful wisdom

이야기 1_ 씨앗


작은 씨앗 하나가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곳은 연으로 가득했거든요. 씨앗은 늘 부러워했어요.

“나는 커서 뭐가 될까? 혹시 나도 너희와 같지 않을까?”

연들은 바람이 이끄는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일렁이며 말없이 웃기만 했어요.


씨앗은 강가까지 쭉 뻗을 만큼 커다란 연꽃잎 아래에서 지냈어요. 햇빛이 너무 강할 때는 살짝 가려주고, 빗방울이 너무 세게 떨어질 때는 연잎으로 떨어진 빗방울을 연못으로 비워버렸어요.

“나를 지켜줘서 고마워.”

씨앗은 늘 연꽃잎에 감사하며 지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쳤어요. 쏟아지고, 세차게 불었지요. 씨앗이 걱정되었던 연잎은 억지로 버티고 버티다 그만, 줄기가 우두둑 꺾이고 말았어요.


“안돼! 나를 지켜주려다 네가….

내가 너처럼 자랐더라면,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친구가 되었을 텐데….”

혼자 남겨진 씨앗은 떨렸어요.


다음 날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씨앗을 감쌌어요.

“아, 이렇게 따뜻한 거였구나. 나는 그동안 왜 피하기만 했을까?”


씨앗은 천천히, 조금씩 힘을 내어 껍질을 열기 시작했어요.

깊숙이 뿌리를 뻗었고, 빼꼼 싹이 고개를 내밀었어요.

작고 연약했지만, 그건 씨앗 자신의 힘이었어요.


해가 지고 뜨길 여러번,

싹은 잎을 틔우고,

마침내 꽃을 피워냈어요.


“안녕?”

연못 가득한 초록은 말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손을 흔들었어요.



이야기 2_ 그림자 토끼


푸른 숲속에 한 마리 작은 토끼가 살았어요.

토끼는 겁이 많아서 큰 동물들 가까이에서만 다녔지요.


“사자 형님 옆에 있으면 든든해.” 사자 그림자 속에 숨은 토끼가 말했어요.

“곰 아저씨 뒤에 있으면 무서운 게 없지.” 역시나 곰 아저씨 그림자 뒤에 숨어서 의기양양한 토끼가 말했어요. 언제나 큰 동물들 근처에서만 안심했어요.


숲속에 달빛이 환하게 비춘 어느 밤이었어요.

사자도, 곰도, 모든 동물이 깊이 잠들었는데, 토끼는 잠에서 깼어요.

목이 말랐거든요.


두리번 두리번. 다들 너무 곤히 자고 있었어요.

친구들을 깨우고 싶지 않았지요.

‘금방 다녀올 수 있겠지?’


살금살금,

바위 그림자에 숨었다가

나무 그림자로 옮겨 다니면서

개울가로 혼자서 걸어갔어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돌아선 토끼는 달빛 아래에서 길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어요.

“어? 이게 내 그림자야?”

처음에는 그림자가 더 커다란 괴물처럼 보여 깜짝 놀랐어요.

뒷걸음질을 쳤어요. 그런데 그림자도 똑같이 따라 했어요.

토끼가 귀를 쫑긋 세우자, 그림자도 똑같이 귀를 세웠고,

토끼가 발끝으로 깡충 뛰자, 그림자도 똑같이 뛰었어요.

달 아래에서 이리저리 다니던 토끼는 잠시 멈춰 서서 그림자를 바라보았어요.

“나는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구나. 그런 거구나.”


달빛은 토끼의 발밑을 환히 비추었고,

토끼는 왠지 마음이 따뜻하고 든든해졌어요.

그날 이후로도 토끼는 여전히 큰 동물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하지만 더 이상 그림자 속에 숨어다니지는 않았어요.

숲속 친구들은 말했어요.

“토끼야, 너 어쩐지 더 씩씩해 보인다!”



이야기 3_ 눈동자 속 아이


작은 마을에 한 아이가 살았어요. 그 아이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꼭 눈을 들여다보곤 했지요.

“어, 내 모습이 보여!”

친구 눈 속에 비친 아이는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웃는 자신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지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볼 때면 이상했어요.

거울 속의 아이는 전혀 웃지 않고 있었거든요.

“왜일까?”

아이는 자꾸 궁금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친구와 다투고 말았어요.

그날은 화가 나서 서로 눈을 마주 보지도 못했죠.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거울 앞에 섰어요.

거울 속의 아이는 여전히 웃지 않고 있었어요.


‘친구 눈 속의 나를 볼 수 없으니, 웃는 나도 어디에도 없네.’

마음 한쪽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어요.

“나 스스로 웃을 줄 안다면…” 아이는 중얼거렸어요.


그날부터 아이는 작은 일들을 해보기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문을 활짝 열어 보았어요.

혼자 그림을 그리며 물감이 번져 나가는 걸 바라봤어요.

때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은 구름 하나를 따라 걸어 보기도 했어요.


아이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어요.

혼자 있을 때도 마음이 간지럽거나 넘칠듯 벅찬 순간들이 조금씩 생겼거든요.


친구와 화해를 한 아이는,

눈 속에서 자신을 보았어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일부러 거울을 보진 않았답니다.


아이는 이미 알았거든요.

거울에 비친 자신을 확인하지 않아도, 똑같이 웃고 있을 자신을요.


“이제 이상하지 않네.”

아이는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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