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is kind, smart, important."
이 영화를 봐야겠다 마음먹은 건, 한 장면 때문이었다. 아이는 울면서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가정부는 눈에 밟히는 그 아이를 애써 뒤로하고, 그 곁에 알 수 없는, 뚱한 표정으로 어떤 여자가 서있다.
<The Help>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 미시시피 주 잭슨. 흑인 여성들이 백인 가정의 가정부(“The Help”)로 일하며 겪는 차별, 존엄, 용기, 연대, 젠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 영화를 보며,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듣는 것을 좋아하셨던 Mr.Regan 생각이 많이 났다. 어떤 장면이 왜 기억에 남는지,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기억에 남는 장면_1
취직을 했다는 스키터의 말에 축하의 말을 건네지만, 전혀 관심도 진심도 없는 표정과 말투. 스키터가 친구들과 다른 세상에 속해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 시대가 그런 시대였다지만, 무엇이 어떻게 달랐던 걸까. 같이 어울려도 스키터처럼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자랄 수 있었던 건.
기억에 남는 장면_2
메이가 눈뜨자마자 찾는 사람이 엄마가 아닌 에이블린이라는 것.
그런 애착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메이의 엄마, 엘리자베스를 보며 '아이가 아이를 낳았으니' 산후우울증에 걸려서 힘들어했다는 말을 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메이를 한 번도 안아주지 않았다고. 아이들은 피부로, 온몸으로 사랑을 느낀다고 한다. 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에이블린의 볼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진짜 엄마라고 말하는 메이.
기억에 남는 장면_3
그런 존재가 스키터의 어린 시절에도 있었다. 유모 콘스탄틴. 스키터가 무도회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이유가 못나서란다. 그런 짓궂은 남자애들의 마음이 못난 거라며, 주눅 들지 말라고 진심 어린 말을 전하는 장면. 마음이 못난 것이 진짜 미운 거라며, 그런 멍청한 말들을 굳이 마음속에 두고 주눅 들지 말라고.
29년을 가정부로 일하며 스키터를 길러주었는데. 그저 가정부가 아니지 않은가. 그들 사이에 쌓이고 쌓인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걸까, 생각했다. 스키터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스키터의 엄마, 샤롯. 다시 한번 자신의 기억과 입을 통해 돌아보게 되자, 딸 앞에서 마침내 솔직해지는 장면도 기억에 남았다. '미국의 딸 연맹'에서 주 대표로 뽑힌 것이 그녀가 꿈꿔왔던 일인지 아닌지 모르나, 참 안타까웠다.
이 눈빛을 보면 분명, 샤롯에게도 콘트탄틴이 그저 가정부는 아니었을 텐데,
시야가 좁은 7쌍의 눈들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기억에 남는 장면_4
18명이 죽었다. 백인 10명 흑인 8명. 토네이도 앞에선 그저 약한 인간일 뿐.
기억에 남는 장면_5
사랑스러운 캐릭터, 실리아. 약간 철없는 것 같으면서도 내면이 강하고 솔직하며 진실한 사람.
미니는 힐리의 집에서 해고된 후 셀리아의 집에서 일하게 된다. 가정부를 고용하는 게 처음이라고 말하며 맨발로 마중 나와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외로워 보였다. 친구가 필요했던 그녀.
셀리아는 미니를 그렇게 대한다. 흑인 가정부가 아닌, 친구로. 같은 사람으로. 애초에 그녀에겐 인종이 문제가 아니다. 그런 그녀를 미니도, 다른 백인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 마음을 연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가 된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셀리아는, 미니에게서 배운 요리를 대접한다. 당신이 원한다면 평생 우리 집에서 일해달라는 말 한마디가 감동이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_6
딸의 곱슬머리, 복장이 꼭 골치거리인 것처럼 말하던 스키터의 엄마, 샤롯. 스키터의 친구들처럼 머리하고 옷 입혀서 꼭 시집을 보내려던 샤롯이 마침내 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콘스탄틴에게 했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기에, 사실 저 말은 떠넘기기 같이 느껴졌다. ‘지혜로운 통찰’처럼 포장된 말이지만, 실제로는 책임의 회피, 혹은 죄의식의 유예 같은.
샬롯은 자신의 침묵과 방관을 ‘세대적 한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시대의 산물이었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지.”라는 변명. '용기'를 칭찬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용감하지 않았던 일을 더 이상 직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사과처럼 들리지만, 사과가 아니기 때문. 샬롯은 스키터에게 “너처럼 하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직접적인 말을 하지 않고, 대신 “너는 나보다 용감하구나”라고 돌려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사과는 콘스탄틴에게도 필요하다.
용기란 용감한 것만은 아닙니다.
용기란 연약한 육신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지요.
기억에 남는 장면_7
스키터는 에이블린, 미니 등 흑인 가정부들의 경험을 책으로 엮는다.
백인이라고 하더라도 주변에 자신과 다른 이들이 있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녀는 '말할 수 있는 주체'이다. 에이블린과 미니는 '타자화된 언어적 주체'로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조차도, 백인의 언어와 출판 구조를 통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에이블린이 메이를 뒤로하고 엘리자베스의 집을 나오는 모습은, 스스로의 결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알던 단 하나의 인생이 그렇게 10분 만에 끝났다. 신은 우리에게 적을 사랑하라 하시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순 있다."
"그 누구도 내 감정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었다. 내 감정에 대해 솔직히 말한 뒤로 나는 자유로워졌다."
기억을 서술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그 고통에 응답하는 윤리적 행위.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어떤 언어로 말할 수 있는가?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는가?
그 진실을 누가 말하고, 누가 침묵당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