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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Jan 26. 2018

[Movie] 삶과 죽음,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

《코코》20180111 리 언크리치 作

(본 리뷰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링이 없습니다. 안심하게 읽으셔도 됩니다 )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가려고 예매 어플을 켜고 상영작을 둘러보았습니다. 당시 예매 1위에 애니메이션 《코코》가 뜨길래, 그냥 디즈니에서 나온 어린이 영화겠거니 하고 넘겨버렸었지요.


여기저기에서 《코코》에 대한 자발적 홍보들을 여러 번 듣고 나서야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혼자 앉아서 보다가 후반부에는 청승맞게 혼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서면서 아트북까지 주문했습니다.


《코코》는 절대로 유치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아닙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면 꼭!!! 보시기를 권합니다. 놀라운 상상력과 디테일이 돋보이는 '죽은 자의 세계', 화려한 색감으로 한껏 꾸민 귀여운 해골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울림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중남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OST는 덤입니다. 주제곡 "Remeber me"의 한국어 번안곡은 가수 윤종신 씨가 불렀다고 하네요.(https://youtu.be/6BGjH-gtpXo)  저는 리뷰를 쓰는 내내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 버전을 번갈아 듣고 있습니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주인공 미겔은 음악을 사랑하는 소년입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음악만은 절대 안된다며 미겔을 가로막습니다. 미겔의 고조할아버지가 음악을 하겠다며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버렸기 때문이지요.


영화는 주인공 미겔이 가족과 음악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우연히 '죽은 자의 세상'으로 넘어가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예측 가능한 정도이고, 스토리 자체가 매우 놀랍거나 독창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스토리 안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놓는 것이 이 영화의 큰 매력입니다. 가족,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묻어 있는 작품입니다.


소개 - 리 언크리치 감독

가장 강력한 스토리는 개인에게서 나온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스토리의 주제가 보편적일수록 전 세계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가족보다 더 보편적인 주제가 과연 있을까?

- 《The Art of 코코》 p.9




영화는 멕시코의 풍습인 '죽은 자의 날'을 중심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은 엄숙하고 장엄한 우리나라의 제사 풍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죽은 자의 날'은 여느 추모 의식과는 달리 다채로운 색깔과 음악, 생기 넘치는 축제 분위기로 채워진다. 화려한 문양의 설탕 해골과 빅토리아 시대를 연상케 하는 해골, 형형색색의 페이스 페인팅 등 대부분의 멕시코 사람들은 이날의 상징과 표현이 주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 《The Art of 코코》 p.9


'죽은 자의 날'에 먼저 간 가족들을 즐겁게 추억하는 멕시코의 풍경을, 영화 《코코》는 매우 디테일하고 아름답게 담아냈습니다. 특히, 이승과 저승을 이어준다는 금잔화 꽃잎이 흩날리는 모습은 무언가 들뜨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완전히 상상력에 의존해서 구성해 낸 '죽은 자의 세계'도 대단히 정교합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주어 이승과 대비되지만, 음침하기보다는 반짝이는 조명들로 가득한 화려한 도시의 느낌입니다. 영화에서 이승이 '아름다운 자연, 낮의 공간' 이라면 저승은 '화려한 도시, 밤의 공간' 인 셈입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죽은 자의 세계'에 있는 높은 탑 모양의 건물은, 층층이 쌓이는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맨 아랫층에 피라미드부터 시작해서 윗층으로 갈수록 현대와 가까운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트북《The Art of 코코》에는 디자이너들이 참조한 다양한 멕시코의 건축물들이 실려 있습니다.


'죽은 자의 세계'에는 무시무시한 지옥불도 없고, 근엄한 염라대왕이나 저승사자의 심판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릉도원처럼 이상적인 공간도 아닙니다. 모두 해골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현실 세계와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현실에서 가수였던 자는 그곳에서도 콘서트를 하며 인기를 얻고, 사람들은 무슨무슨 날을 기념하며 호화로운 파티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현실을 꼭 닮은 '죽은 자의 세계'에서 제 2의 인생을 즐기는 귀여운 해골들을 보며, 아마 관객들은 각자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저는 고생만 하다 가신 우리 할아버지도 저런 세계에서 저들처럼 즐겁게 지내고 계셨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래전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린 지인은, 이번 차례상에 아령을 놓아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생전에 운동을 좋아하셨다며.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스토리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봅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를 보며, 제게 인상적이었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영화의 시작에서 미겔의 엄마는 임신 중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영화의 끝부분에서 미겔은 아기 동생을 안고 있지요. 한편 미겔의 증조할머니인 '코코'할머니는 치매를 앓는 노인입니다. 그리고 결국 세상을 떠나는 모습까지 영화에 등장합니다.


사실은 미겔의 엄마가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았더라도, 스토리 전개에 큰 영향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굳이 영화 내에서 삶과 죽음의 모습을 담아낸 점이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태어나는 일은 기쁜 일이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마음이 아픈 일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삶이란 이 출생과 죽음의 한가운데의 어딘가에 있는 것이고, 살면서 수많은 출생과 죽음이 우리 곁을 스쳐갑니다. 


미겔 동생의 출생, 그리고 코코 할머니의 죽음. 저는 이 출생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족이란, 이렇게 출생과 죽음으로 엮여 같은 공간과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 아닐까요. 





영화는 '죽은 자의 날'이 되면 망자들이 '죽은 자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나들이를 온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가족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해골들의 모습이 귀엽습니다. 


한편, 현실 세계에서 아무도 망자를 기억해주지 않으면, 망자는 '죽은 자의 세계'에서도 완전히 소멸됩니다. 또 한번의 죽음인 셈입니다. 


우리는 사전 조사를 진행하며 흥미로운 점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멕시코에는 누구나 세 번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믿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첫 번째 죽음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두 번째는 땅에 묻힐 때, 그리고 마지막은 고인을 잊지 않고 추억하던 사람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다. 더 이상 살아있는 누군가로부터 기억되지 못할 때, 마지막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세 번째 죽음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 개념 자체는 물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아주 시적으로 개념화하여 나타낸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 개념은 죽은 자의 세상에서는 세 번째 죽음을 둘러싼 물리적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제이슨 카츠 (스토리감독) 

- 《The Art of 코코》 p.116


인간은 불로장생과 꿈꿔왔지만 그것을 손에 넣지는 못했습니다. 육체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니까요. 시간에 매인 육체를 초월해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누군가의 기억에 의미있는 존재로 기억되는 것 아닐까요.


영화《코코》는 제게,  삶이란 그리고 죽음이란,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영화《코코》 메인 예고편 ☞ https://goo.gl/5G8J7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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