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20180228 임순례 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에는 별로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주인공 혜원이 밭일을 하고, 밥을 하고, 친구들을 불러 밥을 먹고. 그것이 전부입니다. <삼시세끼> 극장판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대중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지친 청춘들의 모습이 잘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작은 고시원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고시공부를 합니다. 그러다가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고향으로 쫓기듯 내려왔습니다.
재하(류준열 분)는 취업에 성공해 회사를 다니다가 때려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은숙(진기주 분)은 안정적인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늘 이 답답한 마을을 떠나 멋진 서울생활을 하고싶어 합니다.
이 영화를 보는 젊은 관객들은 영화 속 혜원, 재하, 은숙의 어떤 장면에서든지, 분명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이 회사원이든 취준생이든, 고향에 자리를 잡았든 타지생활을 하고있든 말이죠.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도망치듯 고향집으로 내려온 혜원. 은숙은 혜원에게 왜 갑자기 내려왔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혜원의 대답은,
"배고파서."
이 시골마을에서 태어나서, 이 마을의 은행원이 되어, 이곳을 한 번도 떠나보지 않은 은숙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에 서울에 가면 화려하고 맛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배고파서 고향에 왔다니. 그냥 고시 떨어져서 속상해서 온 것이 아니냐고 혜원을 놀리지요.
저는 고등학교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서, 기숙사와 자취방을 전전한 것이 올해로 14년차입니다. '배고파서 고향에 왔다'는 혜원의 말이, 실없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혜원의 서울생활 회상 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자취방으로 돌아갑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공짜로 받아올 수 있습니다. 혜원은 어두운 고시원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한 입 먹다가 도로 뱉습니다. 상한 것이었습니다. 혜원의 모습 뒤로 보이는 고시원 벽에는 '관악구 신림동 쓰레기 배출일' 이라고 쓰인 포스트잇이 보입니다.
그리고 한참 뒤, 시골로 내려간 혜원은 큰고모가 차려준 밥상을 허겁지겁 먹습니다. 별로 특별한 반찬도 없습니다. 그냥 따뜻한 밥, 김치, 나물 몇 가지. 너무 맛있다며 걸신들린 것처럼 밥을 먹는 혜원의 모습을 보다가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혜원이 작은 입 안에 욕심껏 밥을 욱여넣는 모습이 우스워서, 다른 관객들이 다같이 웃고 있던 장면이었는데 말이죠.
'혜원은 정말로 배고파서 고향에 왔구나, 내가 종종 그러했듯이.'
제가 살던 자취방에도 분명 분명 작게나마 부엌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해먹는 밥은 엄마가 해주는 그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집에 가면 엄마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제가 요리를 해서 가족들과 함께 먹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둘러앉아서 먹는 그 밥은 왠지 자취방에서 혼자 먹는 것과는 다른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사시는 집은 시골이 아니지만, 어쨋든 집 현관문을 탁 열고 들어가서 익숙한 공기를 맡는 순간 왠지 안도감이 듭니다. 집에 온 기분, 안전한 기분, 보호받는 기분. 어디에서 누가 날 공격할까봐 날을 세우고 있던 그 긴장과 불안을 모두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 기분.
혜원 역시 그런 마음으로 고향을 찾았을 것입니다. 엄마가 그 시골마을에 '심고 기른' 혜원은, 고향에서 자신과 함께 나고 자란 것들로 밥을 지어먹으며 상처받은 자신을 돌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이 같은 제목의 일본 만화라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더라면, 저는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부터 각 배역에 배우 류준열과 김태리, 진기주를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오해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배우들은 자신의 역할에 꼭 맞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특히 김태리 씨는, 콧잔등을 찌푸리며 웃는 어린애 같은 미소와, 또 반대로 깊은 눈매가 주는 어른스럽고 사색적인 분위기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소박하고 따뜻하고 상처받았지만 여전히 반짝거리는, 똑똑한 시골 소녀 혜원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혜원이 조용히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고, 밭일을 하고, 가만히 누워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제가 그 시골에 '힐링 여행'을 하러 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실제로 영화는 사계절의 풍경을 담기 위해 1년에 걸쳐 영화를 촬영했다고 합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쿡방이고 먹방입니다.
저는 "다이어트, 오늘부터 1일!" 을 외치고 호기롭게 팝콘이나 콜라도 사지 않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결국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저는 막걸리를 한 병 사서 두부김치를 해먹으며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저의 의지박약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반드시 공복상태로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혜원이 조물조물 막걸리를 빚는 장면. 감을 매달아 곶감을 만들고, 밭에서 대충 잘라온 배춧잎으로 배추전을 부쳐먹고, 밤을 보글보글 끓여 밤조림을 만드는 장면. 이 장면들을 모두 보고 나면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어떤 음식이 엄청나게 먹고싶어질 것입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쿡방이고 먹방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각자 인생의 숙제를 풀어가는 영화입니다.
혜원의 숙제가 무엇인지, 엄마의 숙제는 무엇이었는지, 또 그들이 답을 찾았는지, 그 답은 무엇인지 이 영화는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몫으로 비워둔 것 아닐까요.
우리는 각자의 숙제를 안고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고, 영화를 보고 나오면 자기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가 자기만의 숙제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 작가에게 제공되는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