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다, 책갈피 02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덕영대로 417번길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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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천천히 스미는>은 기존에 있던 <노르웨이의 숲>이 춘천으로 이전하면서, 같은 자리에 인계받은 서점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천천히 스미는>이라는 이름은 동명의 책 제목에서 따오셨다고 합니다.
서점에 들어가려고 문을 여는데, 유리문 앞에 고양이가 야옹야옹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문을 열면 고양이가 밖으로 탈출할까봐 문을 열지도 닫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태로(?) 사장님을 불렀습니다. 사장님은 그냥 문 열어도 된다고 하시더니, 길냥이가 서점 앞에 있길래 들인 것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문을 열자마자 쏜살같이 밖으로 나간 길냥이는 10초도 안돼서 다시 서점을 바라보며 들여보내달라고 야옹야옹, 들어오게 해주면 다시 바깥을 보며 야옹야옹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천천히 스미는>은 이런 마성의 변덕을 부리는 길냥이에게 친절을 베푸시는 사장님이 계신 곳입니다. LP판으로 틀어주시는 음악과, 커피알못인 저는 용도를 잘 모르겠는 여러가지 커피 도구(?)가 인상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천천히 스미는>은 독립출판물들과 일반 출판물들을 함께 취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일반출판물은 인터넷 서점이 더 싸긴 하지만, 그래도 구경하시라는 뜻으로 가져다놨다"는 사장님의 솔직한 코멘트가 따뜻하고 귀여웠습니다.
서점 입구 근처에는 아늑한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있어 푹 눌러앉아 책을 읽기에 좋아 보입니다. "개인적인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도 좋다"고 써붙어 있으니 다음엔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다 가야지 싶습니다. 커피가 맛있어 보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서점 안쪽 공간에는 여럿이 둘러 앉을 수 있는 큰 나무테이블이 놓여있습니다. 벽으로 반쯤 분리되어 있어서 독서모임 같은 걸 하기에 딱 좋은 공간으로 보였습니다.
유래없는 한파로 손님이 뜸한 날인데, 서점을 찾아줘서 감사하다며 사장님은 제게 예쁜 미소를 지어주셨습니다. 서점 주변에는 주로 노인분들이 사시는 곳이라,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르는 동네 주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저처럼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대부분인데, 오늘처럼 영하 20도의 한파에 버스를 내려서 다시 얼마간 걸어서 이 곳에 온다는 것은 쉽지 않겠죠. (저도 차가 없었더라면 서점은 커녕 집앞 마트도 안 나갔을 거에요.)
작은 동네서점을 찾는 여러 즐거움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냥 익명의 손님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환영받는 느낌 같은 것이요.
따뜻한 환영이 느껴지는 친근한 공간, 수원 동네서점 <천천히 스미는> 방문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