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80314 이장훈 作
소지섭, 손예진 주연의《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동명의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장훈 감독은 일본 원작의 플롯을 전혀 바꾸지 않으면서도 원작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새로 만들어냈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의 일본 원작은 여름 장마비 같은 영화입니다. 영화 내내 쏟아지는 장대비와 초록의 풍경이 어우려져 만들어내는 영상미, 그리고 일본 특유의 신비로우면서 처연한 감정선.
반면 이번에 개봉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 한국판은 살랑살랑 봄바람의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비의 계절'의 이야기이지만, 개봉일인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 꼭 알맞은 영화입니다. 살랑살랑 썸을 타는 사이라거나 풋풋한 연인사이에서 함께 본다면 핑크빛 기류를 극대화할수 있을 것이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커플이라면 오랜만에 잊혀진 설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여자, 남자 그리고 8살난 아들이 주인공입니다. 여자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에게 '1년 후 비의 계절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1년 후 여름 장마가 시작되던 날, 죽은 여자가 마법처럼 남편과 아들 앞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 자신이 결혼을 했다는 것도, 아이가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하나 듣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다시 한 번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여자가 왜 기억을 잃은 상태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포함해, 여러가지 비밀이 밝혀집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세상을 떠난 여자에 대한 남자와 아들의 그리움, 그리고 다시 돌아온 여자가 너무나 소중하면서도 그녀가 또다시 떠나버릴까 두려웠던 남자와 아들의 슬픔. 이것이 일본판에서 중심이 되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한국판《지금 만나러 갑니다》 의 장르를 제게 묻는다면, 저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슬픈 장면들이 때때로 등장하지만, 한국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은 어린 수아(손예진 분)와 어린 우진(소지섭 분)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기억을 잃은 30대의 수아와 우진이 또다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회상씬을 통해 현재와 과거에서 두 개의 사랑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동시에 진행됩니다. 영화를 보는 두 시간동안 저는 그 이야기에 폭 빠져서, 수아와 우진의 두근두근 설렘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수아와 어린 우진이 짝사랑에 마음을 졸이고, 무언가 해보려고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좌충우돌 사고를 만들어 내는 모습. 그 귀엽고 풋풋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처음으로 극장 데이트를 하던 날 영화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수아 손을 잡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는 우진의 긴장과 설렘은,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마찬가지로 영화관에 앉아있는 저까지 왠지 두근거리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현재시점의 수아와 우진이 언덕에 앉아 영화를 보는 장면입니다. 기억을 잃고 우진에게 경계심을 가지고 있던 수아는 우진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됩니다. 사실상 아들까지 있는 부부 사이지만 수아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으니까요. 수아와 우진이 다시 한 번 간질간질 썸을 타던 어느 날, 두 사람은 동네 언덕에 올라가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습니다. 언덕 아래로는 커다란 스크린이 보입니다. 망원경과 라디오를 준비해서, 자동차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몰래 훔쳐보는 것입니다.
망원경 하나를 두고 서로 보겠다고 투닥거리는 귀여운 모습들. 어둑어둑한 밤하늘과 조용히 풀벌레 지저귀는 소리. 수아와 우진의 로맨스가 절정에 이르는 장면입니다. 그들의 설렘이 함께 느껴져서 지켜보고 있는 저까지손끝이 저릿저릿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
그 자동차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는 공교롭게도 《이터널 선샤인》 입니다. 기억을 지우고 또 지워도, 여전히 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수아와 우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정말 정말로, 운명적인 사랑이란게 있는 걸까요?
가끔, 인생에서 어떤 막다른 길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과거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선택의 순간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 때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후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씁쓸한 결말을 알고도 되돌릴 수 없는 선택들도 있습니다. 순간 순간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들이 모여, 공교롭게도 씁쓸한 결말로 향했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찬장에 숨겨놓은 초콜릿을 아이가 발견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아이는 초콜릿을 몰래 먹었고, 엄마에게 들통이 나서 크게 혼쭐이 났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먹어본 그 달콤함에 사로잡혀 또다시 초콜릿을 훔쳐 먹을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의 달콤함을 위해 엄마의 꾸중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또는, 인생에 다시 없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큰 지병이 있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면?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면 이별이 조금 빨리 다가올 것임을 알더라도, 명치 끝이 아플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선택할 지도 모릅니다. 함께하는 동안의 행복이 그를 잃는 슬픔보다 훨씬 크다면 말입니다.
어리석은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어리석은 선택을 합니다. 힘든 결말을 자초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인간의 가장 슬프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우진과 수아처럼 말입니다.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 작가에게 제공되는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