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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May 03. 2018

[Book] 때론 책이 우리를 구원한다.

《모든 요일의 기록》20150710 김민철 作


모든 선물은 기분이 좋지만 책 선물은 특히 반갑습니다. 게다가 그냥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집어온 책이 아니라, 상대방이 내 책장을 들여다보고 고심 끝에 골라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모든 요일의 기록》을 그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민철 작가를 좋아하는 친구가 "언니도 이 책을 좋아할 것 같다"며 선물해준 책입니다.


그 관심과 정성도 감동적이었지만,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수록 정말로 제 마음에 쏙 들어오는 책이라 몇 배로 행복했습니다. 저 자신이 쓴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공감가는 문장들이 가득했습니다.


맥주를 한 잔 하며《모든 요일의 기록》을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아주 많은 구절에 펜으로 쓱쓱 밑줄을 그었고, 군데군데 제 감상을 날리는 글씨로 흘려 적어놓았습니다.


책을 다 읽었으니 리뷰를 써야 하는데, 하나의 완결된 글을 쓸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밑줄 그은 모든 구절들을 주욱 늘어놓고, '이것 봐, 이것도, 또 여기도, 저기도, 나랑 똑같은 생각이야!' 라고 계속 첨언을 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조용한 고집이 있습니다. 타인에게 제 생각을 강요하거나 권하지 않지만, 반대로 타인이 제 삶에 관여하거나 훈수두는 것에 설득되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더라도, 저와는 생각이 전혀 다른 '새로운 통찰'을 주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파수가 맞지 않는 책이랄까요.


반대로 저와 주파수가 잘 맞는 책, 그러니까 제가 갖고 있던 설명되지 않는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정확히 집어내어 설명해주고 해소해주는 책을 좋아합니다.


제 안에 쌓여있던 막연한 답답함이나 우울을 명쾌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내주고, 작가의 조언이나 결론을 아주 살짝 얹어 전하는 책을 좋아합니다.


《모든 요일의 기록》은 제게 그런 책입니다.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 하필이면 출판된 지 몇 년이 지난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책-연(冊-緣)을 가져다 준 이와 인연(因緣)을 맺은 것도 행운이고요.


때론 책이 우리를 구원한다. 책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책으로 구원받는다. 드물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귀하게도. 고맙게도.

- 《모든 요일의 기록》- p.75




제 마음같아서는, 지나가는 이를 붙잡고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어보라고 권한 다음, 그 이가 책을 읽는 동안 옆에 찰싹 붙어서 매 구절 구절 제 생각을 덧붙여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으니, 애써 완결된 글의 형태를 갖춘 리뷰를 써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쳐놓은 구절을 타이핑으로 모두 옮겨놓고, 스크롤을 주욱 내려 다시 읽으며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이 책의 주제가 뭘까, 나는 어떤 주제로 리뷰를 써야 하나.


그렇게 내린 결론.《모든 요일의 기록》은 김민철 작가의 자기소개서입니다. 고용인의 입맛에 맞게 내 삶의 일부분은 도려내고, 일부분은 덧붙인 취업용 '자기소개설' 말구요. 


내 삶의 가치관, 성격, 못난 점, 나만의 행복과 우울,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좋아하는 사람, 요즘 빠져있는 상념들에 대해 꾸밈없이 털어놓은 자기소개서 말입니다.


리뷰에 소개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몇 개를 골라내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고르고 또 골라 《모든 요일의 기록》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몇 구절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빵집 아들의 운명은 도넛이다. 그렇기에 늘 텅 비어 있고,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김연수 작가의 깨달음이었다.

《청춘의 문장들》에서 그 구절을 읽는 순간 갑자기 나는 나의 운명을 깨달았다. 나는 검은 건반이었다.

마음 어딘가에 늘 어두운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밝히기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 아무리 해도 천성 저 바닥 밑까지 밝은 빛이 어리기엔 나는 좀 많이 어둡고 어느 정도는 불협화음과 같은 존재였다.

-《모든 요일의 기록》 p.65
 조금이라도 일찍 깨닫고 그 사실을 직시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내가 이유 없이 지치는 것이었다. 남들은 다 즐거울 수 있는 순간에도 혼자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괜히 사람들이 있는 곳은 피하는 것이었다. 혼자 있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이었다. 밖이 불편한 것이었다.

어두운 책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밝고 희망찬 책에는 왠지 모를 불신이 생기는 것이었다.

 -《모든 요일의 기록》 p.67


아주 오랫동안 저를 맴돌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왜 좀 더 단순하게, '그냥' 살지 못할까?"

"왜 나는 이렇게 감정의 촉을 민감하게 세우고 살아서,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김민철 작가는 제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거라고. 원래 그런 것이니 받아들이고 그에 맞춘 삶을 살면 된다고.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답이지만, 그것을 깨닫고 또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른 클래식 곡은 하나도 모르면서, 강렬한 고뇌와 우울이 담긴 베토벤 소나타를 이유 없이 좋아하고, 참을 수 없는 행복감에 대한 책보다는 참을 수 없는 우울에 대한 글을 더 좋아하는 저는 '검은 건반'같은 사람이었나봅니다.


그리고 저처럼 '검은 건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존재한다는 사실에 왠지 안심이 되는 기분입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남자주인공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 똑같은 하루를 다시 한 번 살아간다. 어제 놓쳤던 많은 것들을 음미하며,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의미 있게, 작은 실수들 없이. 하지만 나에겐 타임머신도, 두 번의 기회도, 좋은 머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쓸 수밖에 없다.

(중략)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내 감정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되니까.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아니, 이해해보려고 적어도 노력해볼 수는 있으니까. 그러니 쓴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 하나이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 《모든 요일의 기록》 p.261
그리하여 말로 하기엔 너무 구차한 그 작은 상처들을 나는 일기장에 털어놓았다.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아야 내가 살 수 있었다. 쓰고 쓰고 또 썼다. 그렇게라도 쓰고 나면 위로가 되었다.

- 《모든 요일의 기록》 p.263


저는 과거 3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후에도 그 묵은 감정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김민철 작가와 마찬가지로, 그 때에 저를 위로한 것이 다름 아닌 글쓰기였습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등장하기도 전인 취준생 시절부터, 울음처럼 토해놓았던 과거 일기들을 들추어 정리했습니다.


과거의 나를 마주하며, 그리고 새로운 글들을 쓰며 저는 위로받았고, 엉켜있던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1년이 넘은 시점에서야 그 연재를 모두 마쳤고, 저는 그제서야 비로소 진짜로 제 인생에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음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  연재된 글은 여기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김민철 작가는 글을 쓰며 세상을 이해했고 자신을 위로했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김민철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보았고, 그의 시각으로 세상을 구경하는 경험을 했고, 저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소개된 카뮈의 《결혼, 여름》,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을 읽어볼 것이고, 정경화의 《Con Amore》앨범을 찾아 들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나서 김민철 작가의 또다른 저서 《모든 요일의 여행》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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