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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Oct 27. 2016

미래는 현재의 의지로부터 비롯된다

일드 <프로포즈 대작전> 2007


태어나서 처음 본 일본드라마-<프로포즈 대작전>.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유치뽕짝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각자의 경험에 따라 수만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드라마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말랑말랑한 로맨스를 보고 싶을 때, 영화 건축학개론 처럼 첫사랑의 추억에 잠기고 싶을 때 정주행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설정 면에서는 영화 나비효과의 로맨틱코미디 버전 같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여자주인공 레이의 결혼식날에서 시작됩니다. 남자주인공 켄은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던 레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결혼식장 프로젝터에는 신랑신부의 어릴적 사진들이 차례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레이의 사진에는 늘 켄이 함께 있습니다. 사진들을 보며 켄은 아쉬움과 후회로 가슴을 칩니다.


그때, 켄의 앞에 후덕하게 생긴 요정 아저씨(?)가 나타나 과거로 돌아갈 기회를 줍니다. 사진을 찍던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가 실수를 만회하고 과거를 바꾸어버릴 기회를 얻은 거죠. 과거로 돌아간 켄은 레이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무진 애를 씁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옛날옛날에 아주 비겁한 이별통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너는 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자격이 있어, 그리고 우리가 운명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나지 않을까.”

 저는 당시에 그 말이 너무 비겁하게 느껴져서, 남아있던 정마저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는 운명을 믿지 않습니다. 인연이라는 것은 같이 노력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하늘에서 점지해준 것 마냥 어느날 갑자기 마법처럼 짜잔 하고 인연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한걸까요? 그냥 ‘운명’ 같은 실체없는 것에 책임을 떠넘기고 도망가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인연은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현재의 의지로부터 비롯된다.


저는 이것이 12화에 걸친 이 드라마의 분명하고 간단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켄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수없는 후회와 노력을 반복하며 이 사실을 깨닫습니다.


드라마에는 남자 한명이 더 등장합니다. 레이와 켄의 고등학교 교생선생님이자 '현재'에서  레이의 남편이 되는 타다센세입니다. 말하자면 켄의 라이벌인 셈이죠.


켄이 주인공이다보니 아무래도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내내 켄의 마음에 동화되기 마련입니다. 어찌보면 타다 센세의 사랑도 켄 못지않게 진심인데도,왠지 레이의 마음이 타다센세에게로 조금씩 조금씩 기울어가는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후반부로 갈수록 ('현재'시점에서) 타다센세를 택했던 레이의 마음에 더 공감이 갔습니다. 늘 내 곁에 있는 켄에게 나도 모르게 마음은 가지만 동시에 나를 헷갈리게 하는 멍청이 켄에 대한 원망도 커지고. 내가 통제할 수 없게 자꾸만 커져가는 내 감정들 때문에 불안하고 무섭고. 그 와중에 타다센세는 나에게 안전하고 따뜻하고 한결같고.


언젠가 레이가 켄에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타다센세는 적어도 진심으로 나를 똑바로 봐주었다고. 말의 앞단에는 "켄 니가 주변만 빙빙 맴돌고 한번도 확신을 주지 못하는 동안" 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을 켄는 왜 모를까요? 멍청이 켄-조.


켄이 이런저런 상황을 다 고려하고 걱정하면서, 만약에 고백했다 실패하면 어쩌지, 창피하면 어쩌지,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고 빙빙 도는 동안, 타다센세는 조심스럽지만 심플하고 분명하게 한발 한발 레이에게 다가와주었습니다. 다정한가 하면 멀어지고, 용기내서 고백해볼까 싶으면 도망가는 켄과는 다르게 말이죠. 진심을 담은 대화를 시작해보려고 해도 그 진지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낄낄낄 농담을 하며 상황에서 도망가버리는 켄에게는, 내 사랑을 다 내어줘도 괜찮겠다 싶은 안전지대가 없었던 것입니다.





(본 글의 후반부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로포즈대작전>의 결말이 허무하다는 의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과거로 돌아가도 그 과거를 바꾸지 못하고 '현재'에서 레이의 손을 잡고 도망갈 일이었으면 왜 켄은 과거에 열번씩이나 가서 그 고생을 했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그 ‘과거체험’이야말로 멍청이 켄을 각성시킨 중요한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요정아저씨가 켄 앞에 나타나서 백번을 이야기 했더라도, 그 후회와 노력의 시간들을 직접 겪지 못한 상태의 켄은 절대로 결혼식에서 레이에게 고백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알을 깨야한다.


요정아저씨가 켄에게 계속해서 하는 말입니다. 알을 깬다는 것은 자신을 버린다는 것, 자신을 둘러싼 많은 고민과 두려움을 모두 깨버린다는 것입니다.

켄이 레이에게 다가가는 길목을 막아선 모든 제약조건을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서 얻고 싶을 만큼 레이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요정아저씨의 훈계와 과거체험 덕분이었습니다.


후회는 늦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이순간 너의 의지와 노력이 미래의 인연을 만든다.


이 간단하지만 어려운 명제를 깨닫게 해주는 장치가 타임슬립입니다. 그러니까 이 결말은 절대로 허무한 것이 아니고, 켄도 결코 쓸데없이 삽질(?)을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의 인생에도 <프로포즈대작전> 같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레이였을 것이고 또 언젠가는 누군가의 켄이었겠죠. 레이가 좋아하는 커피우유를 사주고 싶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 켄과, 이에 실망해 켄에게 등을 돌리는 레이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커피우유 같은 사소한 일들이 모여 삶의 방향을 틀고 틀고 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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