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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Oct 27. 2016

[Movie] 羞惡之心이 없는 세상

<동주> 20160217 이준익 作


지난 2월 극장에서 영화 <동주>를 보고 끄적여둔 메모가 있었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한 지금에 와서 그 글을 다시 보니 가슴이 먹먹하기 그지 없습니다.


저에게 윤동주 시인은 그냥 교과서에 실린 시를 쓴 분이었습니다. 힘든 시대를 살았던, 처연하고 소년같고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시를 썼던 시인. 그뿐이었습니다. 훌륭한 분이지만, 위인전에 박제된 인물처럼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지는 않는 그냥 훌륭한 분.


그런데 영화로 재연된 그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잘나가는 친구에 대한 약간의 열등감과, 시대에 대한 적당한 분노와, 또 한켠에는 어리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하고싶은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했던 그냥 내 나이 또래의 평범한 청년. 윤동주 시인이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영웅화되지 않아서 참 좋았습니다.


내 주변에도 있을 법한, 그리고 나의 모습과도 비슷한 그냥 평범한 청년 윤동주가 힘든 시대들 타고나서 본인의 뛰어난 재능을 부끄러워하고, 또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을 본인의 두려움을 부끄러워하고, 개인으로서는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본인의 무력함을 부끄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부끄러웠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동시에 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라 꼴이 이지경이 되도록 나는 무엇을 했나. 선거날 폴랑폴랑 가서 도장이나 몇번 찍고서는 대단한 민주주의의 주역이라도 된 양 자랑스러워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건 아닌데, 이렇게 가면 안되는데, 옳지 않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먹고사니즘을 방패삼아 이 모든 것을 강건너 불구경처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회의주의를 방패삼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스위치조차 끄고 산 것은 아닌지.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 부끄러워야 합니다.

부끄러우려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지성이 있어야 하고, 판단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부끄러움에서 오는 내적 갈등과 불편함을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부끄러움이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크든 작든 말입니다.


수오지심이 없는 세상입니다. 시비지심이 없는 세상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나쁜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두고 미련한 짓이라고 합니다. 약삭빠르게 내 이득만 잘 챙기면 그만이라고들 합니다. 저를 꼬드기는 그 목소리들에 기대어 저도 점점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포기해온 것 같습니다.


저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반성하고 개선해나가는 것이 인간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자고 계속해서 다짐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 '개돼지' 취급을 받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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