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다, 책갈피 07
(강원 속초시 수복로259번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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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바람을 쐬러 속초나들이에 나섰습니다. 11월의 동명항은 마침 양미리 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해산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저에겐 천국같은 곳이지요. 동명항에서 회를 잔뜩 떠서 짝꿍과 둘이서 와구와구 먹고, 2차로 허름한 포장마차에 앉아 양미리와 도루묵 구이까지 해치웠습니다.
맹자께서 선비는 항산(恒産)이 없어도 항심(恒心)을 가질 수 있다고 했는데, 저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無恒心)인가봅니다. 배를 두둑히 채우고 나자, 그제서야 속초 여행을 오면 둘러보기로 한 서점 <완벽한 날들>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완벽한 날들>은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비릿한 생선냄새로 가득한 동명항에서 걸어서 15분, 붐비고 시끄러운 버스터미널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아담하고 조용한 서점이 마법처럼 나타납니다.
<완벽한 날들>은 책을 특정 테마별로 분류하고, 짧지만 인상깊은 문구로 테마를 간단히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여행자를 위한 책'이라던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처럼요.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책들을 모아놓은 코너가 있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또한 사소한 점이지만 책장에 빈공간이 많은 것이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았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고, 그 중에서 단지 몇 권만을 골라 책장에 꽂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책을 파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이런저런 책을 모두 갖다두면 누군가 사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완벽한 날들>의 책장은 절반도 채 차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책 앞면이 보이도록 진열해두거나, 관련된 메모를 두는 자리로 활용하거나, 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서점이라기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친구의 잘 꾸며진 서재를 구경하는 것 같은 아늑한 공간이었습니다.
<완벽한 날들>은 서점. 카페, 게스트하우스를 겸하고 있습니다. 작은 서점들 중에서는 간단한 음료 판매를 겸하는 곳들이 아주 많지만, <완벽한 날들>은 단지 서점에 부수적으로 카페를 운영한다고 보기에는 음료의 종류도 많고 디저트류도 훌륭했습니다.
다음번에는 혼자 조용히 내려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카페, 서점, 게스트하우스 공간이 주는 시너지를 충분히 음미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