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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Jan 02. 2019

[Book]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기

《리지의 블루스》 김명선 作 


《리지의 블루스》는 수원의 독립서점 리지블루스 (☞관련글 )를 운영하고 있는 책방지기 '리지'의 이야기입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리지를 따라다니는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 회사를 그만두고 수원에 독립서점을 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책방을 운영하며 겪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아주 솔직하게 적어내려갔습니다.


작가는 쉽지 않은 마음으로 써내려갔을 글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읽기에는 참 편안한 문장들로 쓰여 있습니다. 저는 《리지의 블루스》를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러나 리뷰를 쓰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리지의 블루스》를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포스트잇으로 표시해 놓았고, 책을 다 읽고서는 그 구절들을 타이핑해서 갈무리 해두었습니다. 원래는 그것들을 바탕으로 제 이야기를 더해 리뷰를 쓰는데, 이번 책은 리뷰를 쓰지 못한 상태로 한참을 그냥 묵혀두었습니다.


지금도 리뷰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이 리뷰를 얼마나 솔직하게 쓸 수 있을지, 얼마나 편집하지 않고 브런치에 그대로 공개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리지의 블루스》 책 뒷표지에는 저자가 쓴 책 소개가 쓰여 있습니다.


서울대를 나와서 우울증에 걸려서 세 번 퇴사하고 작은 책방을 차린 리지의 이야기


저자인 리지 스스로 한 줄로 요약한 리지의 삶은 제 삶과 닮아 있었고, 저는 《리지의 블루스》에서 제가 숨기고 싶었던 저 자신의 모습을 여러 번 발견했습니다. 리뷰를 쓰다보면 필연적으로 이런 점들을 언급해야 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글에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같은 중학교 친구가 전교에 10명도 안 되는 새로운 학교에 왔으면서 초기에 또래 그룹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시기에 친구를 사귀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던 나는 곧 반에서 친구가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아이들한테 대놓고 무시당하는 건 아니었지만, 점심시간에도 체육 시간에도 내가 아이들에게 빌붙지 않으면 나는 혼자였다.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중략)

시험지 채점이 끝나고 중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면서 망언을 했다. 전교 1등을 못하는 게 왕따 당하는 것보다 싫다고.

- 《리지의 블루스》 p.12


리지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때로는 '내가 잘못했지' 하고 반성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각도에서 과거의 자기 자신을 위로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참 외로웠다. 2학년 때부터는 친구 그룹을 형성해 겉으로 보기에는 외롭지 않은 생활을 했지만, 마음을 나누는 진짜 친구라고 느끼지는 않았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람한테 진짜 곁을 잘 안주는 사람, 즉 내가 문제라는 생각도 들고, 많아야 40명인 한 반에서 나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 《리지의 블루스》 p.13


책을 읽기 전에는, 리지의 우울증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니 아마도 대학시절을 거쳐 회사 생활, 그리고 책방을 운영하는 이야기까지가 실려 있지 않을까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리지의 블루스》에는 대학 시절보다 더 이전, 어린시절의 회고까지 기억을 더듬어 올라갑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이 왜 필요했을까 궁금했는데, 아래와 같은 구절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랫동안 질문해 봤다. 애초부터 서울대를 포기하고, 100점을 맞기 위해 교과서가 걸레가 되도록 보는 전교 1등이 아니라, 적당히 놀고 적당히 공부해서 80~90점 맞는 상위권 학생이었다면 나는 좀 더 행복했을까. 내 고등학교 생활은 좀 덜 외로웠을까. 서울대를 다니지 않았어도 나는 여전히 우울증에 걸렸을까.

- 《리지의 블루스》 p.14


리지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굳이 어린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글을 쓴 이유를 제 마음대로 짐작을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떨쳐 낼 수 없는 지긋지긋한 우울증과 '함께 살다' 보면, 가끔 화가 나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남들은 다 멀쩡한데 왜 나 혼자 이렇게 힘든 것일까. 다들 부러워하는 대학에 와서 남부럽지 않다고 할 만한 삶을 살고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별나게,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의 순간을 누리면서 살지 못하는 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윽고 기억을 더듬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대체 언제부터, 왜 우울이 나를 따라다닌 것이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죠. 《리지의 블루스》 에 어린 시절의 교우관계까지 끄집어내어 쓰여 있는 것이 제게는 그 고민의 과정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서울대에 가겠다고 독하게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또는 서울대에 가서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삶의 기준치를 저 높이까지 올려놓지 않았더라면, 또는 그때 그랬더라면, 저 때 저랬더라면...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덜 우울할까? 조금 더 행복할까? 그게 아니라면 나의 우울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 우울을 어디로 보내야 내가 조금 더 편안해질까.




서울대 졸업생으로 가슴 한 켠에 품고 사는 근거없는 자신감.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자리잡은 묵직한 부담감. 남들보다 잘나가고 싶은 욕망. 동시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찾고 싶은 모순된 마음. 《리지의 블루스》의 저자 리지는 이 모든 것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서울대 졸업생이라는 학벌을 가지는 것은 우리나라에서처럼 수직적 줄세우기를 좋아하는 사회에서 꽤 많은 면에서 이롭게 작용한다. (중략) 정말 헛짓거리만 하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층의 마지노선이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높다.

그런 서울대생이 스스로를 밑바닥 인간이라고 느낄 때, 그 이유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다. 자신이 서울대학교와 이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을 내집단이라고 느끼는 이상, 내집단 구성원과의 비교를 피하기는 어렵다. 네가 합격한 그 회사, 네가 유학 가는 그 학교, 왜 나는 못 갔을까. 내가 원하지 않던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SNS에 올라오는 남들의 잘 돼가는 소식을 보면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 《리지의 블루스》 p. 21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은 때로 내게 '그래도 하나는 남들보다 낫잖아'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어준다. 또한 때로 내게 '그래도 서울대를 나왔으니 남들보다 잘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짐을 짊어지운다.

(중략)

중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이었으니, 그때의 친구들이랑 비교해서 내 삶의 등수가 상위권이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 《리지의 블루스》 p.21


저는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같은 서울대 출신들에게는 어쩐지 자존심이 상해서 할 수 없는 말, 반대로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지인들에게는 의도치 않게 잘난척으로 들릴 것 같아서 할 수 없는 말. 하지만 제가 삶에서 부딪히는 많은 고민들을 밑바닥까지 파헤치다보면 그 중심에 있는 못난 마음. 그것을 이렇게 활자로 풀어내어 고백하다니. 제게는 (저 스스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대단한 일로 보였습니다.




저자 리지는 《리지의 블루스》를 통해, 우울증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의 원인(또는 시발점)을 찾고자 한 과거의 이야기, 우울증으로 인해 촉발된 다양한 사건들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미래의 이야기.


리지는 많은 분투와 고민 끝에 우울증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내 우울증은 언젠가 또 재발할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반은 받아들였고 반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절망적이기도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다. 나는 내 우울증을 완치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다룰 수 있게 될 거라고는 생각한다. 완벽하게 다룰 수는 없겠지만 그런대로 살아가는 데,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큰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다룰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리지의 블루스》 p.50


우울증을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리지는 꽤 편안해보입니다. 그녀를 아주 가깝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책에 등장한 '과거'의 리지, 회사를 다니며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던 모습보다는 지금이 훨씬 안정되어 보입니다. 그리고 우울증을 누르고 이겨내려고 하지 않고, 우울증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가령, 통근시간이 길면 힘들어지는데, 그것을 극복하고 억지로 에너지를 쥐어짜려고 하지 않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일하는 방법을 찾는다고 합니다.)


《리지의 블루스》를 읽으며 저는 이십대 초반 즈음, 제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 제게 해준 말을 떠올렸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강점혁명》이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었는데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강점과 약점이 있고, 갖지 못한 강점을 억지로 만드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약점을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울증(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네가 괜찮은 사람인 것이 아니야. 우울증 덕분에 지금의 네가 있는 것인지도 몰라."


요점은, 우울증을 앓게 한 그 성격적 특성이 곧 강점을 만들어낸 요인이기도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단적인 예로,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고 타인에 대한 기준이 낮아서, 늘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들이대니 우울증이 쉽게 올 수 있는 것이지만, 반대로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늘 부지런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울증을 숨기거나 극복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저의 강점을 있게 한 고마운(?) 점으로, 그리고 단지 관리해야 할 약점 정도로 이야기 해 준 것은, 방황하던 제게 커다란 관점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 한마디 덕분에 힘든 시간들을 모두 지나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리지의 블루스》를 읽으며, 오래전 묵혀두었던 이 말을 떠올렸고, 리지에게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리지도 저처럼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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