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인간> 161101 무라타 사야카 작
<편의점인간>의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18년간 편의점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소설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로 아쿠타가와상을 받던 날에도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시상식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소설 <편의점인간>은 작가 본인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주인공 후루쿠라는 특별한 직업 없이 18년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서른여섯 독신 여성입니다. 후루쿠라는 어린 시절부터 본인이 뭔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애써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잣대에 몸을 꾸역꾸역 쑤셔넣지만, 여전히 묘하게 주변부로 벗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나는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모두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안 돼요. 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성행위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봅니다. '창녀와 관계한 건 포함시키지 말고요' 하는 말까지 웃으면서 태연히 하죠, 그놈들은. 나는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 <편의점인간> p.109
서른여섯의 나이에 그럴 듯한 직업도 없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18년째 하고 있는 미혼의 여성에게 사회는 조용히, 하지만 폭력적인 고함을 그치지 않습니다. 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가져서 "평범"의 선 안으로 들어오라구요. 후루쿠라는 이것이 못내 불편합니다.
후루쿠라는 이에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너무 많은 사회적 잣대로 침범당해서 본인의 영역이 조금도 없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텅빈 그 영역은 임시방편의 변명과 연극으로 가득차있습니다. 적당한 거짓말들을 포장지처럼 덕지덕지 발라놓고 그냥 그 안에 가만히 들어앉아 아무에게도 자신의 "평범하지 않음"이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사람한테는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가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면, 나를 이상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꼬치꼬치 캐묻잖아? 그런 귀찮은 상황을 피하려면 그럴 듯한 변명이 있어야 편리해."
이상한 사람한테는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가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게 민폐였고, 그 오만한 태도가 성가시게 느껴졌다. 너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초등학교 때처럼 상대를 삽으로 때려서 그러지 못하게 해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 <편의점인간> p.73
후루쿠라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과 감정을 흡수해 적당히 따라하고, 직업을 가지지 않는 이유도 지병이 있는 것으로 일찍이 변명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심지어 결혼과 연애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자 비슷한 처지의 낯선 남자 시라하씨를 집에 들여 함께 살기도 합니다.
편의점은 정말 독특한 공간입니다.
개별성이 모두 삭제되고 마치 기계를 대신해서 인간이 서있는듯한 공간이지요. 밖에선 개성넘치는 대학생, 분유값을 벌려는 아기엄마, 은퇴 후 일거리를 찾는 중년남성일지 모르지만 유니폼을 입는 순간 그들은 모두 동일한 개체가 됩니다. 종업원 A가 근무하든 B가 근무하든 제품의 진열, 청소상태, 계산방식, 할인율 등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마치 게임 속 NPC같달까요. 인간 자판기인 셈입니다.
근면성과 질서정연함, 획일성과 왕따의 나라
서양권에선 나올 수 없는 소설입니다. 편의점의 본고장이자 근면성과 질서정연함의 나라, 반대로는 획일성과 왕따의 나라 일본에서라야 나올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편의점문화가 고스란히 이식된 한국에서도 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루쿠라는 자신의 삶에 참견하는 사람들의 침입에 자기만의 영역을 모두 빼앗겨 내어주고 맙니다. 무언가를 보고 불쌍하다/슬프다/기쁘다를 느끼는 본인의 감정, 연애와 결혼, 직업선택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신이 편의점과 동일시되어 버립니다.
나는 문득, 아까 나온 편의점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손과 발도 편의점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자, 유리창 속의 내가 비로소 의미있는 생물로 여겨졌다.
"어서 오십시오!"
-<편의점인간> p.196
다소 묘한 느낌의 이 결말은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소설이 <변신>의 프롤로그 같기도 합니다. 나 자신에 대해 한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타자화된 후루쿠라의 모습은, 벌레로 변신하고서야 그간 자신을 얽매이던 사회와 가정에서의 의무와 굴레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 그레고르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그래서 깨달았어요. 이 세상은 조몬시대와 다를 게 없다는 걸.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삭제되어 갑니다. 사냥을 하지 않는 남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 현대사회니 개인주의니 하면서 무리에 소속되려 하지 않는 인간은 간섭받고 강요당하고, 최종적으로는 무리에서 추방당해요."
세상에 "평범"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요?
세상의 수많은, 제각기 들쭉날쭉한 "비범"을 모두 모아 가상의 "평범"을 만들어놓고 모두에게 평범해지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현실도 주인공 후루쿠라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아직 세상을 채 알기도 전인 만 6세부터 같은 책상에 앉아 평범을 향해 깎이고 길들여지고, 그 다음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이 주르륵 줄을 서서 대학에 갑니다. 그 다음은 취직, 결혼, 출산, 육아. 그리고나면 또다시 내 아이의 대학, 취직 결혼........
우리 모두는 제각기의 '편의점'에 갇혀, 이물질이 되지 않기 위해, 제각기 실존하지 않는 "평범"에 나를 꾸역꾸역 맞추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