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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Mar 20. 2017

[Book] 여성 해방, 그리고 가정으로의 회귀 1

<하우스와이프 2.0> 20150305 에밀리 맷차 作


그녀는 31세이고 얼마 전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근무하던 로펌으로 돌아가는 대신 집 부엌에 컵케이크 공방을 차렸다. 그녀는 목적의식이 강한 아이비리그 졸업생인데, 기업의 세계를 빠져나와 버몬트의 농장으로 피신해 왔다. 그녀는 천천히 조리한 로스트포크나 직접 만든 애플 소스를 음미하는 즐거움을 글로 쓰는 푸드 블로거이다.

- <하우스와이프 2.0> p.16


똑똑하고 교육받은 능력있는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접고 '하우스와이프'를 자처하는 현상

<하우스와이프 2.0>은 위와 같은 사례, 즉 똑똑하고 교육받은 능력있는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접고 '하우스와이프'를 자처하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유래없는 장기불황의 시대에, 직장생활에 헌신했을 때 돌아오는 이득이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각종 SNS를 통해 가사(家事)가 다시금 가치있는 것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우스와이프 2.0>에서는 여성들이 직장을 버리고 가정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비교적 '자발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비자발적인 이유로 커리어를 포기하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벼랑끝에 몰려

한국에서도 여성들이 직업을 포기하거나, 여유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급여가 적은 직업으로 옮겨가는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 그 중에는 <하우스와이프 2.0>에서 설명한 것처럼 자발적 선택인 경우도 물론 있겠습니다만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벼랑끝에 몰려 울며 겨자먹기로 소중한 일을 그만둔 경우도 분명 존재합니다.


저는 결코 그 모든 경우가 자발적인 것이라고, 또는 자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직장생활을 경험하고 결혼을 앞둔 미혼 여성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책에 소개된 자발적 하우스와이프의 생각에 상당부분 공감했을 뿐임을 밝힙니다.


'하우스와이프 1.0'은 여성의 사회진출권이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 비(非)자발적으로 가정에 남아 남편을 내조하고 가사와 육아를 전담했던 가정주부입니다. 반면 '하우스와이프 2.0'은 충분히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생활을 할 능력이 있음에도 자발적으로 가정으로 돌아오는 여성들을 지칭합니다. 


세상에 직장과 가정생활의 균형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더라고요.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은 우리에게 유리천장을 뚫고 어디든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직장으로 나갔고, 곧 깨달았지요. <이런....... 거지 같은 삶을 봤나.> 육아휴직도 너무 짧고, 가정이랑 직장 일이랑 다 잘 하는 건 불가능하고, 세상에 직장과 가정생활의 균형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더라고요. 

- <하우스와이프 2.0> p.41


저자는 '일·가정 양립'이라는 말 자체가 '90년대의 농담'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명시적 제한만 없애면 '일·가정 양립'이 실현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지요.애초에 일·가정 양립이란 단순히 여성의 사회진출권과 관련한 문제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직장은 동일한 조건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내는 직원을 원합니다.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매우 뛰어난 성과를 낸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직장 생활에서의 성과는 투자한 시간과 비례합니다. 따라서 가정 또는 개인 생활을 희생해서라도 더 많은 노력과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사람이 더 큰 성과를 내고, 결과적으로 직장생활에서 살아남기 마련입니다.


이제는 일 그리고 가정, 둘 모두를 지켜야 합니다.

앞선 세대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을 가정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자, 이제 우리 모두는 남성과 동등하게' 일 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성만 일을 할 때에는 여성이 가정을 지켰습니다. 이제 남녀가 모두 일을 합니다. 그러면 가정은 누가 지키지요? 집안일은, 그리고 육아는 누가 할까요? 결국은 부담이 더 커졌습니다. 이제는 일 그리고 가정, 둘 모두를 지켜야 합니다.


슬프게도, 아내를 위한 또다른 아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남성의 가사분담률이 낮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두 부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의 절대량이 증가한 것입니다. 단순화한 수치를 들어 비교하자면, 이전에는 남편의 바깥일(1) + 아내의 집안일(1), 즉 2만큼의 일을 두 부부가 분담했습니다. 이제는 남편의 바깥일(1) + 아내의 바깥일(1) + 집안일(1), 즉 3만큼의 일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슬프게도,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서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여성을 위해 '내조'를 해 줄 또다른 '아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저렇게까지 해서 CEO가 되고 싶은가?
직장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집안일과 자녀 양육의 책임을 안고 있는 여성들에게, 집과 직장 일을 유지하느라 외줄타기 하듯 위태롭게 사는 삶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어머니들이 직장 일과 가정을 모두 유지하느라 애쓰는 걸 보아 왔고, 언론을 통해 <모든 것을 다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정도로는 철이 들었다. (중략) <내가 정말 저렇게까지 해서 CEO가 되고 싶은가?>

암울한 경제 여건 덕에 대표이사가 되고, 파트너가 되는 것은 예전에 비해 훨씬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는 가르침 아래 자란 세대에게는 그리 선망의 대상도 아닌 것이다.

- <하우스와이프 2.0> p.42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던 부모님 세대와는 다릅니다. 역량 있는 사람은 차고 넘치지만 더이상 기업에서는 그만큼의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직장에 투자한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가장 소중한 가정을 희생해 가면서 직장에 온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을까요?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 결국 문 달린 중역 사무실을 얻어 내는 것보다 중요하더라는 인식. 이렇게 느낀 것은 비단 여성뿐만이 아니다. Y세대 남성들 역시, 비록 돈과 권력을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에서 자라났지만, 갈수록 일과 직장의 균형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더 이상 강자를 위해 일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 <하우스와이프 2.0> p.31


정리하자면, 경제 불황 속에서 일터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일·가정 양립은 점점 더 어려워지며, 직장생활은 더 이상 죽을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할 만큼의 보상도, 매력도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위와 같은 이유로, 고학력 고소득의 여성들이 가정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머니 세대의 '하우스와이프 1.0'과는 다른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하우스와이프 2.0' 으로 거듭납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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