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인생> 20120611 은희경 作
지난 1월에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라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를 포함해, 각 분야별 전문가들의 특강을 연달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지요. 바로 그 곳에서 은희경 작가의 <태연한 인생>을 만났습니다.
은희경 작가는 당시 신형철 평론가와 함께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약 한시간 간의 강연을 맡았습니다. <태연한 인생>이라는 소설의 낭독회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말에, 저는 현장에서 책을 구입해서 강연 전 점심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후루룩 읽어 내려갔습니다.
<태연한 인생>은 '요셉'과 '류'라는 두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중심으로, '류'의 부모의 이야기를 병행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류'의 이야기와 '류'의 부모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임에도 "매혹과 패턴"이라는 같은 주제를 맴돌며 묘하게 겹쳐집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줄거리 자체가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자의 시점에서 읊어주는 은희경 작가만의 세련된 문체, 그리고 그 안에 치밀하게 배치된 작가의 주제의식이 바로 <태연한 인생>의 핵심입니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것이 과학자나 철학자 들이 밝혀내려고 했던 세상의 정돈된 이치였다면 아버지 쪽은 매혹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매혹은 아버지의 기질이 그렇듯 태생적으로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었다.
- <태연한 인생> p.11
류는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성장했고 애증으로써 어머니를 신뢰했다. 그러나 종종 아버지가 물려준 매혹의 세계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았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그녀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 <태연한 인생> p.16
앞서 언급한 강연에서 은희경 작가는 '매혹과 패턴'이라는 주제를 계속해서 강조했습니다. 심지어, '상처받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매혹하고 매혹되어라!'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고서 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 여러 평론가의 평이나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본 경험은 있지만, 이번처럼 그 반대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태연한 인생>은 작가의 입으로 주제를 먼저 듣고서 읽어 내려가서 더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작가가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치밀하게 배치해놓은 문장들을,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으니까요.
'매혹'은 무책임하고 불규칙하지만 숨막히게 뜨겁고 열정적입니다. 반면 '패턴'은 규칙적이고 예측가능하고 합리적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매혹'되어 사랑을 시작하지만, 어느새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패턴'이 되고 맙니다. 선택은 두 가지 입니다. '패턴'이 되어버린 구(舊) '매혹'을 받아들이고 살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매혹'을 찾아 나설 것이냐.
류, 사랑하는 사람은 동등해야 해. 빚이 있는 관계에서는 아무리 사랑을 품고 있어도 그것을 나눠 가질 수가 없어. 한쪽이 빚을 진 상황에서 사랑은 회복되지 않는 거야. 그럼 빚을 갚으면? 류의 질문에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빚을 갚은 뒤에는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지. 류는 뒷날 그 말을 떠올리며 어머니는 아버지가 빚을 갚아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빚을 갚지 않았다. 뻔뻔스러움과 몰상식함과 불균형을 잃으면 매혹이 아닌 것이다. 당연히 계산도 하지 않는 것이다.
- <태연한 인생> p.15
-착한 여자들은 말야, 패턴을 강요해. 그것처럼 남자를 지겹게 만드는 건 없을걸.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변하잖아. 당연하지. 안 죽었으니까.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변하는 거거든. 변한 사람들끼리 똑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는 없는 것 아냐?
- <태연한 인생> p.111
'류'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새로운 매혹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었고, '류'의 어머니는 패턴에 혼자 남아 삶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은희경 작가는 둘 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둘 모두를 애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되고 끝나는지를 담담하게 관찰할 뿐입니다. 보통 익숙한 관계를 탈출해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서는 인물은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과 다르지요. 결국 소설 속 '류'는 아버지의 매혹과 어머니의 패턴을 물려받아 그 사이를 오가며 성장했고, 또다른 남자 '요셉'에게 매혹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서사를 통과한 류는 순진한 연인은 아니었다. 요셉의 궁극적 욕망이 자신의 내부를 향한 것이며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소설이라는 개인적 영역을 위해 소진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류는 자신이 매료된 것이 태연한 속에 깃든 파탄의 맛이란 것을, 열렬한 삶 속에 깃든 차고 날카로운 죽음의 맛이란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죽음을 기다리도록 태어난 무력한 존재들에게 그 죽음의 맛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열렬하고 능동적인 삶의 증명이었다. 매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면서 두번 다시 오지 않는 끝이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것들과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고 믿는 것들이 섞인 채로 흘러가는 것이다.
- <태연한 인생> p.263
사실 저는 얼마 전 로런 그로프의 소설 <운명과 분노>를 읽으며 심한 우울감에 빠졌습니다. 두 남녀의 사랑과 결혼 이면에 숨겨진 거짓과 분노를 보며, 결혼 생활의 '민낯'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은희경 작가의 <태연한 인생>은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소설 속 여러 사랑들 중에 'happily ever after'로 끝나는 것은 하나도 없음에도, 왜인지 이 작품은 저에게 끊임없이 매혹되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로건 그로프의 소설 <운명과 분노>를 읽으며 <태연한 인생>을 떠올렸고, <태연한 인생>을 읽으며 다시 <운명과 분노>를 떠올렸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은희경 작가가 <태연한 인생> 말미에 적어 놓은 작가의 말이 그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두 작품 모두, 사랑하고 매혹되기로 운명지어진 인간, 그래서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실패할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매혹하고 매혹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일어나는 뜻밖의 일들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며, 운명이란 주어진 운명에서 도망치려 할 때 바로 그 도망침을 통해 실현된다.
- <태연한 인생> p.268 작가의 말.
<태연한 인생>은 서사나 주제의식을 떼어놓고도, 그 세련되고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책장에 묵혀두고서 생각이 날 때마다 아끼는 노트에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며 곱씹을 만한 작품입니다. 사랑과 이별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누군가에게 매혹되는가,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의 사랑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특히 더욱 그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