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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Apr 29. 2017

[Book]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20121219 히가시노 게이고 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서점에서 보고도 몇 번이나 그냥 지나쳤던 책이었습니다. 일본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예쁜 표지그림과 책 제목만 보고서는, 말랑하고 가볍고 조금은 싱거운 일본 소설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쫄깃쫄깃한 추리 소설의 대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런 말랑한 책을?" 이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어느 날, 오랜 친구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내밀었습니다. 평소 책 추천에 실패가 없는 친구였기 때문에, 저는 친구의 안목을 믿고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아주 말랑말랑한 감성과, 아주 쫄깃쫄깃한 서스펜스가 동시에 존재하는 책입니다. 눈 앞에 아주 아름다운 마법이 펼쳐지는 기분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위로의 동화 같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은 물건을 파는 것보다 고민 상담으로 유명한 독특한 가게입니다.

어떤 고민이든 척척 해결해주는 잡화점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xx시에 자리한 '나미야 잡화점'. 혼자서는 해결 못할 고민거리를 편지로 써서 밤중에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에 넣으면 그다음 날에는 가게 주인이 집 뒤편의 우유 상자에 답장을 넣어준다.

(중략)

"나중에는 상담 내용을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에 넣도록 했습니다. 답장은 가게 뒤쪽 출입문에 달린 목제 우유 상자에 넣어줍니다. 그러면 익명으로 상담하려는 사람들도 마음 편히 편지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랬더니 언제부터인지 어른들도 고민거리를 편지로 써서 넣어주더라고요. 나 같은 평범한 노인네한테 상담을 해봤자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겠지만, 어떻든 내 나름대로 열심히 궁리해서 답장을 써드리고 있어요."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p.24


이야기는 쇼타, 고헤이, 아쓰야라는 세 주인공이 우연히 이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들면서 시작됩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인 나미야 유지 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동시에 가게도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습니다. 그런데 잡화점에 머무는 하룻밤 새에, 세 주인공은 과거로부터 오는 고민편지를 받게 됩니다. 나미야 잡화점은 시간이 멈추어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죠.


세 주인공은 장난처럼 고민편지에 답장을 하기 시작했지만, 곧 편지를 보내오는 이들의 삶에 진심으로 몰입하게 됩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시간은 멈추어 있고, 편지를 보내는 이들의 시간은 빠르게 흐릅니다. 덕분에 세 주인공은 몇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고민 상담자들의 삶을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압축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에서 우연히 고민 상담을 하게 된 세 주인공과, 그들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진심을 담아 고민 편지를 보내오는 많은 이들, 그리고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 나미야 유지씨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그 어떤 등장인물도, 어떤 에피소드도 무의미한 것이 없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우연과 인연으로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쉽지 않은 삶을 그저 꾹 꾹 견뎌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현실의 냉혹함이 칼날처럼 마음을 후벼놓을 때, 삶의 불안이 마음에 유령처럼 남아 가시지 않을 때,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순간들이 뾰족하게 나를 찌를 때에,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작은 등 하나만 켜고 사각사각 읽어내려가면 참 좋을 책입니다. 사실은 내가 책을 읽고 읽지만 어쩐지 책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기분, 그리고 나에게도 작은 기적들이 모습을 숨기고 찾아와 나를 위로해 줄 것 같은 올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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