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청년 새끼> 20170413 최서윤,이진송,김송희 作
인터넷 교보문고에 <미운 청년 새끼>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소개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운 청년 새끼』는 청년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일컫는 이유, 자신을 흙수저라 자조하는 이유, N포세대라는 말이 미치도록 싫은 이유를 가장 생생한 목소리로 담은 책이다. 먹고사니즘, 정치, 문화, 연애, 주거까지 다섯 개의 주제는 청년의 삶을 관통해 대한민국과 청년의 현주소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워낙에 지독한 시절입니다. 텍스트 또는 미디어의 형식으로 공유되는, 고통과 분노에 찬 청년 세대의 외침은 너무나 많아서 오히려 그것에 둔감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위의 소개글은 다소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책 소개와는 달리, <미운 청년 새끼>는 '평면적인 청년세대의 한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책입니다. 단순히 이 시대 청년들의 우울한 모습을 묘사하고 나열해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청년들의 공감을 얻고자 한 것에서 그치지 않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저자들은 'N포세대'를 비롯하여 현재의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각종 프레임조차, 여전히 이 사회의 주류를 차지한 기성세대의 타자화된 시선에 의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각자의 삶 안에서 존재할 뿐이며, 우리를 한 가지로 규정하려고 하지 말라며 청년세대의 해방을 외치고 있습니다.
N포세대라는 네이밍에서부터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느껴지는 거죠. 출산, 연애, 결혼을 포기한 세대라고 3포세대라고 불렀다죠? "꼭 해야 하는 것들을 포기하다니 우리 청년들 너무 불쌍하다"는 건데, 저는 다르게 보거든요. 이제는 '못 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보다, "나는 '안 하기'로 선택한 거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선언과 요구,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요소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보입니다.
- <미운 청년 새끼> p.21
<미운 청년 새끼>는 아래와 같이 먹고사니즘, 정치, 문화, 연애, 주거라는 다섯 개의 주제를 가지고 3명의 저자가 번갈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먹고사니즘, 일자리가 생기면 불안함이 사라질까? (김송희)
정치, 더럽고 치사해도 놓치지 않을거에요. (최서윤)
문화, 죽은 듯 살지 않기 위해 찍 소리 내기 (최서윤)
연애, 한없이 낭만에 가까운 기만 (이진송)
주거, 네 집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송희)
<미운 청년 새끼> 는 문체가 참 재미있습니다. 3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작성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같은 작가의 분량 안에서도 어떤 부분은 '청년세대의 주거/연애/문화 생활' 정도의 주제를 달고 있을 법한 사회과학 학술논문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은 그냥 친한 언니가 맥주를 마구 들이키며 분노와 냉소주의에 가득 찬 개인사를 한탄처럼 늘어놓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많은 연애 조언과 상담이 성 각본을 강화하고 연애를 규격화, 획일화하며 개인을 함몰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남자는 어떻다, 여자는 어떻다, 남자가 더 좋아해야 오래 사귄다, 이러이러한 관계는 저러저러하다, 언제는 무엇을 해야 한다...... 사회에 흔히 퍼져 있는 차별적이거나 구조적 문제점을 답습하는 통념들이 공식처럼 개입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뭔가 특이하거나, 이상하거나,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나는 남자의 손을 먼저 잡거나 고백했다는 이유로 '신여성'으로 불렸고오, 지금은 2017년이고요.
- <미운 청년 새끼> p.274
세 저자는 각기 다른 인생의 발자취를 툭툭 털어놓고, 그것을 따라가며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맞아 맞아!' 하며 무릎을 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꽤나 제도권 안에서 제도권이 원하는 트랙을 밟아온 사람임에도, 제가 걸어온 트랙의 많은 부분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던 저자들의 마음에 이렇게나 공감이 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특히, 겪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할, 아주 사소하지만 깊은 슬픔의 순간에 대해 말할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해 보이는 성정의 아랫집 여자도 앞 건물과의 거리가 20미터도 안 되는 이런 밀집 지역에 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1.5층에 열 평도 안 되는 집을 룸메이트와 고양이 세 마리와 나누어 쓰면서 집 앞 골목의 소음까지 온전히 흡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누군들 이렇게 살고 싶었을까.
- <미운 청년 새끼> p.303
절망감이 극한에 치달을 때, 자존감이 땅을 치는 밤에 어두운 방에 누워 울 때가 있다. 세상이 망해버리면 좋겠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왜 나는 이 모양이지. 그럴 때 내 발치에서 쌕쌕 숨을 쉬는 털복숭이의 배를 바라본다. 숨을 쉴 때마다 후추의 배는 작게 움직인다. 이곳이 안전하다고 믿고 내 앞에서 배를 뒤집고 잠을 자는 후추의 배를 보며 생각한다. 세상은 평화롭고, 나는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 <미운 청년 새끼> p.348
이 책은 2017년을 살아가는 청년의 삶 전반을 구석구석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제가 동의할 수 없었던 포인트는 한 가지였습니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굉장히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고, 책 전반의 내용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했던지라 이 점을 꼭 언급해야 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의견을 밝히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중 나를 뒷목 잡게 한 댓글이 있었다. "실력 있는 여성들이 경제적인 이익을 많이 얻게 하는 것은 찬성하는데, 그렇다면 결혼을 할 때도 남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전가하는 걸 없애야겠죠? 이익이 있으면, 그에 따른 의무도 있어야죠." 라는.
여성이 결혼할 때 남성에게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사실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부자 남자는 경제적 자립 능력은 없지만 '어리고 예쁜'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 스스로 원했고 배우자와 합의한 일일 것이다. (중략) 두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무수히 다른 결혼의 면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 정 걱정되면 결혼을 안하면 된다. (중략) 무엇이 그렇게 억울할까?
- <미운 청년 새끼> p.151
책을 읽다가 처음으로 고개를 갸우뚱한 지점이었습니다. 과거에 남성이 무조건적인 강자이고, 여성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불이익과 차별을 받는 피해자였을 때에나 가능할법한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길고 지난한 페미니즘과 투쟁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2017년의 한국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발목을 잡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분명히 남성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과 차별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계층, 다양한 삶의 여성'들'과 남성'들'이 있습니다. 단일한 '여성' 또는 '남성'으로서의 인격을 가진 것이 아니죠. 이 남성들과 여성들 개개인은 각자의 사회적 지위 또는 삶의 단계에 따라 서로 다른 부분에서 양성불평등 체제에서 오는 부당한 혜택과 부당한 차별을 동시에 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혜택과 차별을 모두 SUM으로 계산해서, 최종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차별이 더 크기 때문에 남성은 그들의 차별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잘라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 정 걱정되면 결혼을 안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라면, 여성이 받는 차별에도 "그 회사에서 받는 차별이 싫으면 다른 회사에가면 되지 않는가"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 버립니다. 남녀를 떠나, 나이를 떠나, 성 정체성과 인종과 사회적 지위를 떠나, 누구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배척하는 것이 양성평등,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일한(여자는 삼일에 한 번씩 패야 함)', '보전깨(보지에 전구 넣고 깨 버림)', '보확찢(보지를 확 찢어 버림)' 같은 폭력적이고 공포를 유발하는 말에 대해 '숨쉴한(그런 말하는 놈들은 숨쉴 때마다 패자)', '후전깨(후장에 전구를......)' 로 응수하며 깔깔거리는 여성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어딘지 든든했고, 두려움은 이완됐다. 메갈이 일베의 말투를 차용한 것도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일 테다.
- <미운 청년 새끼> p.155
일베 등의 극우사이트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언사가 만연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응이 똑같은 폭력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양성평등이 실현되려면 여성들뿐만 아니라, 같은 사안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는 다수의 남성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부 극단적 성향의 남성들의 모임'인 일베에서의 폭력에 대하여, '한남'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남성 전체'를 향한 폭력으로 대응해서 다수의 평범한 남성들을 적으로 돌려야만 했을까요.
저는 페미니즘이 성차별적인 체제에서 피해를 받는 남성과 여성 모두를 포용해서, 단순히 '여성권리의 신장'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양성평등을 이루고, 남성도 여성도 모두 행복해지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