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있으면 온갖 인간의 천태만상을 본다.
그 천태만상 가운데 7년 간의 교직 생활에서는 보지 못한 신유형이 나왔다.
학교의 관리자 선생님께서 받으신 전화라고..
“여보세요?
네, 누군지 밝힐 순 없고요.
영어 서술형 채점 후하게 하지 마세요.”
“???......”
전화를 받으신 선생님께서는 민원을 무조건 처리를 해야하는 관리자 위치에 있으셨기에 알겠습니다~하고 끊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헛웃음을 지으시며 ‘알고는 있어야할 것 같다’며 나를 포함한 나머지 영어과 선생님들께 전달해주셨다. 전달을 받은 우리 영어과 선생님들은 쓴웃음을 짓고 일동이 잠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채점을 후하게 해달라는 요청과 민원은 수없이 들었어도...
이제는 채점을 후하게 하지 말아달라고도 하는구나.
내 아이도 시험 잘 보고, 남의 아이도 시험 잘 보는게 그렇게 싫었구나.
내 아이만 잘봐야하는데, 남의 아이가 잘보게 되는게 그렇게 싫어서 기어이 휴대폰을 들고 학교에 익명으로, 그것도 민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관리자에게 전화를 한거구나...
이런 생각을 영어과 교과 선생님들이 동시에 한 것이다. 눈빛으로 쓴웃음으로..
영어는 언어다.
의미가 성립이 되고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 없고 새로운 문장 구조로 정답을 작성했다면 사실, 정답지에 있는 정답보다 기발한 정답이다.
당.연.히. 맞게 해야하는게 맞다.
이런 정답을 틀리게 한다면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영어를 고민하지 말고, 출제한 선생님의 머릿속을 알아 맞춰봐’라는 이상한 피드백 효과를 주게 된다.
학부모라는 이유로 이런 수준 이하의 요구를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현실이 슬펐다.
학교는 이런 곳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아이들을 더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가 아닌,
민원의 왕국, 내 자식만 잘 되어야하니 남의 자식을 깎아 내려야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