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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의 허세

그러니까 나나 잘하자

사람은 누구나 자기표현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좁은 범위에서건 넓은 범위에서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표현을 통해 상대에게 영향을 주기를 원한다. 내가 표현하는 것에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무척 외로울 거다.



작가나 강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다른 직업군 보다 자기표현의 욕구가 강한 부류에 속한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자주 듣는다. 언젠가부터 '선한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말이 공식적인 멘트가 된 느낌이다.



그런데 선한 영향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테고,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삶에 관심이 없는 부류를 제외하면 그 나머지는 모두 선한 영향력, 가능한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을 거다.

자신의 선함을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을까? 그런데 자신이 선한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약 우리 중 누구도 선하지 않다면, 그리고 누구도 선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때 상대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저 나를 표현하는 것뿐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나의 표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사람사이에서 말의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일부러 미움을 받을 필요는 없다.


물론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내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늘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거에 나는 각자의 자유로움을 인정해주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도록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꽤나 이상주의자였음을 고백한다. 물론 노력하면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불편함을 해소시킬 수는 있겠지만 상대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범인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부족함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들여다보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다. 공부의 시작은 분명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였을 테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의 부족함도 함께 눈에 들어온다. 점차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인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적중률이 놓을 때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자신이 선한 행동을 했다고 느낀다. 나의 존재에 의미가 부여된다. 인정 욕구가 강할수록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미명아래 끊임없는 노력의 쳇바퀴에 들어간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 필요한 자질을 채우느라 나를 돌보는 일은 점차 미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결과와 성과에 집중하는 동안 지금 나의 영혼에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사치로 느껴진다. 경쟁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사람이 더 많은 인정을 받는 법이니까.



다른 사람을 이끌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나를 이끄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나나 잘하자는 말은 속부터 진짜 괜찮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바람과 의지의 표현이다.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 매일 아주 잠시라도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돌아보고 돌보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 조금 더 괜찮은 나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나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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