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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여수의 한 까페에서 드립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다가 글을 쓴다. 맞은편 테이블에는 아주머니 두분이 앉아있는데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나이 이야기까지. 두 사람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한다. 그건 나도 별다르지 않다. 누군가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의 이야기이면서도 남에 대한 이야기니까.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나의 이야기같지만 남의 이야기다.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나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면 우리는 모두 철학자가 되었겠지.

인간의 속성 중에 호기심을 빼면 뭐가 남을까.

대화는 가능한 걸까.






오롯이 글을 쓰는데 집중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늘 분주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데 분주하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가만히 내 안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낀다. 어떤 때 과거의 이야기를 돌아보면 그것이 정말 나의 일이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일이 정말 사실인가. 나의 머리 속에서 조작된 이야기는 아닌지. 이야기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쉽지 않다. 진실공방이 끊이지 않는 뉴스를 볼때마다 모두의 이야기가 그런건 아닌가 생각된다. 나에게 진실이 그에게는 진실이 아니며, 그녀의 진실이 나에게는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무엇인가. 사실은 무엇인가.

사실을 받아들이면 진실이 된다고 했던가.
나에게 있었던 일조차 머리속 해석을 거치고나면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기 어렵다.

매순간 있었던 일을 녹음하고 기록하면 기억의 오류를 방지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 보고 싶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모두 사실인지, 아니 진실인지 의심스럽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시간으로, 어떤 이에게는 그저 지루함을 참는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감정과 상대의 감정이 일치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늘 서로가 마음이 통하기를 원하고 나와 같기를 원한다. 내가 해준것을 그가 오래오래 기억하기를 원하며, 나의 실수는 뒤돌아서면 바로 잊기를 원한다.

어떤때는 아무의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다가, 어떤 때는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혼자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누군가의 감정과 행동을 받아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나와 그가 늘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주절거리며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이렇게 쓰고 보니

역시 나는 참 이기적이기도 하지.




여수의 한 까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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