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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어서 글을 쓰지 못했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고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를 찾다

한동안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웠다. 잘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책이 잘 되고 나서 경험한 가장 큰 단점은 글을 더 잘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건 좋은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내 글을 어떻게 읽을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자체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우리 뇌는 예측 불가하고 모호한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위험엣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안전 욕구가 본능적으로 있다. 그런데 글쓰기야 말로 정체를 알 수 없다. 정답이 없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모호한 대상이다. 여기에다 끝까지 못 쓸까봐 불안하고, 못 썼다는 소릴 들을까봐 또 불안하다. 결국 피하고 본다. (p14)



글을 쓰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분명 문제가 있었다.





능력있는 사람이 자기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한동안 두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잘 쓰는 것 같았다가 잘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가.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때문에 가볍게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워졌다. 속시원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할 때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내가 딱 그랬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았는데 제대로 털어놓지를 못했다. 어느날 봇물처럼 터지는 그날을 기다렸나보다. 그런데 나는 그 봇물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계속 감싸기만 했다. 터지지 말라고, 아직 터질때가 아니라고.

하고 싶은 이야기의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핑계로 글쓰는 것을 멈추고 있었다. 물론 참다가 한번씩 새어나오듯 글을 쓴 적은 있었지만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토해내지는 못했었다.

나는 계몽주의적 성격이 강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좋은 방향으로(이제는 그 좋은 방향에 대해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이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초대박 베스트셀러 작가님도 글쓰는게 두려웠다고 하는데 나라고 달랐을까. 누군가를 의식하는 순간 느껴지는 불안이 실제 행동을 방해한다고 한다.


지레 겁을 먹으면 글이 그것을 눈치채고 글 쓰는 사람 위에 군림한다. 글을 지배하고 글 위에서 호령해야 할 내가 오히려 글의 눈치를 보고 글에 갇혀 옴짝달싹못한다. 당연히 생각도 나지 않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도 못한다. (p17)


자체 검열 때문에 옷입고 나가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렸던 20대 초반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지금은 옷 입는데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기에 나는 무척 자유롭게 옷을 입는 편이다. 내가 입은 것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지 않는다. 감각적으로 옷을 입는 훈련이 되어있으니까. 글쓰기도 마찬가지겠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목적이 생기면 분명 어떤 글이든 쓰게 된다. 중요한 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아는게 아닐까. 내가 하고 싶은 메세지에 혼동이 오면 글은 방향성을 잃는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다 글쓰기가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부디 이시점부터 내 글이 날개를 달기를 조금더 멀리 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려면 날개에 주렁주렁 달린 돌덩이부터 치워버려야지. 그렇게 가볍게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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