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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어렸을 때 아빠는

내가 머리가 나쁘고 미련하지만 노력형이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거란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언니와 남동생에 대해서는 둘다 머리가 좋은데 노력하지 않아서 공부를 못하는거란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사실 근거는 없었다.




나는 ‘미련하지만 노력형’이라는 표현이 정말 싫었다. 그런데 어쩌면 나에 대한 칭찬일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사실 나는 ‘짧은 집중으로 성과를 내는’ 타입이었는데 아빠는 그런 나를 잘 모르셨다.


세월이 한참 지났지만 우리집 식구들은

여전히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중학교 1학년때 난 공부에 거의 미쳐있었다.

초등학교때 공부를 했던 기억은 거의 없다. 6년을 놀기만 했던 내가 처음 나의 의지로 푹빠져서 공부를 했으니 재미있었을 수 밖에.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정말 성적이 오를까?를 스스로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당시 누군가 내게 넌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공부가 취미에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을 때’ 무언가를 가장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이미지코칭전문가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그때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의 시작은 타인과 나 사이에 간극을 채우기 위함에 있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냥 혼자 나를 탐구하는데 몰두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스스로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이 나를 아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지 않고 어떤 피드백도 받지 않는다면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종종 타인에게서 듣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낯설게 들릴때가 있지만 어쩌면 그것 또한 나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나와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일 것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나는 나를 모르고,
나는 당신을 모르고.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마음에 평안을 안겨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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