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다

-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는 그곳에 가 보자, 그럼 살 것이다

by 장보철

내 인생에서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친 장소를 들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묘지와 호스피스를 들곤 한다. "묘지와 호스피스라고?" 아마도 어리둥절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해할만하다. 이 두 곳은 사람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곳의 순위를 메기라면 아마도 1,2위를 다투지 않을까 싶은 그런 장소일 것이다. 묘지가 어떤 곳인가? 바로, 죽은 후에 우리의 육신이 묻히는 곳이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화장을 하지 않는다면, 죽은 자들이 말없이, 그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이 들어가야만 하는 곳이다. 반면, 호스피스는 아직 살아있는, 지금 당장은 살아있지만, 내일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된 환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물론, 몸과 정신이 여전히 그런대로 혼자 살만한 분들도 간혹 가다 있기는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묘지와 호스피스는 피하고 싶은, 결코 일찍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은 그런 곳이다. 삶의 의지희망, 웃음, 놀이, 계획, 산책, 운동, 외식, 여행, 이런 것들과는 이젠 전혀 거리가 멀어진 곳이 아닌가.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묘지와 호스피스는 나의 젊은 날, 나 자신을, 내 인생을, 나의 삶을,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던 곳이다. 오늘은 묘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 나는 살고 있던 집에서 가까웠던 지역의 초대형 교회가 운영하는 기도원을 종종 찾곤 하였다. 어떤 특별한 기적을 체험하거나 병을 고치려는 것보다는, 그곳의 기도굴이 좋았다. 한적한 숲에 여러 개의 기도굴이 있었다. 한 명, 많아야 2,3명 정도 들어가면 딱 좋은 크기의 작은 굴이다. 그곳에 혼자 들어가 조용히 묵상하고, 소리 높여 찬양하고 기도하고, 또다시 침묵으로 들어가다 보면, 내 영혼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기도 후에, 밖으로 나와 깊은 숨을 내 쉬면 차가운 공기와 만나 한결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교회에서 운행하는 서울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참으로 우연히 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 바로 옆에 그 교회 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어, 여기 이런 곳이 있었나?"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저 한 바퀴 쭉 둘러본 후에 나오다가, 문득 어느 한 묘비명에 눈이 멈추었다. <아무개 성도 1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다> "열 살이라고? 이런 이렇게 일찍 죽다니... 태어나서 겨우 10년밖에 살지 못했네." 중얼거리다가 나는 그 무언가에 이끌린 것인 지, 다시 한번 묘비명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5살, 7살, 12살, 15살... 그곳에는 나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그만 세상을 떠난 어린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 놀랬다. 당시 나는 스무 살 쯤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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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에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바로 그날 세상을 떠난다 해도, 나는 그들보다 10년, 15년, 18년을 더 산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세어보았다. 그들에 비해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먹고, 보고, 즐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앞으로 나는 더 살아갈 날이 창창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사했다. 불평하고 비교하며 원망하며 살 수는 없었다.


내가 갖지 못한 것, 나 자신에 대한 불만족스러움 때문에 움추러들며 살 순 없었다. 그날 아침, 내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던 삶에 대한 열망과 살아있는 순간에 대한 소중함에 대한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숨을 쉬며 살아가는 동안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내 인생을 멋있게 살아보겠노라고 나에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 어린 영혼들에게 소리 높여 외쳤다!


지금, 당신의 삶에 어떤 고난이 닥치고 있는가? 어떤 문제로 밤잠을 설치며 아파하고 고통당하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불면증과 우울증과 공황 증상에 시달리고 있는가? 힘들고 어려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도 왠지 나만 잘 못 살고 있는 것 같은 깊은 고독과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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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당장이라도 가까운 묘지를 방문해 보자. 그리고 그곳에 누워있는 당신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뜬 이들을 기억하라. 어쩌면, 그 나이 차이만큼 당신은 덤으로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당신이 느끼는 그 어떠한 부족함이나 결핍도 땅 속에 묻혀있는 이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신이 오늘 당장 우리를 데려간다면 할 말이 있는가. 이 땅에 할 일이, 먹고 싶은 음식이, 입고 싶은 옷과 신발이, 가고 싶은 여행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있는가. 그저 모든 것 다 남겨두고 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적은 것에도 넉넉함을 느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남에게 있는 것과 비교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을 하찮게 여길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아직은 숨을 쉬고 있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만족하며, 희망찬 미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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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회 기도원과 묘지를 방문한 지, 벌써 30년도 더 넘었다. 그때 나이 스무 살보다도 30년 이상을 나는 더 살아오고 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았다. 실제로 많은 것들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가진 것 별로 없이 늘 부족해서 바둥바둥거리며 살아왔지만, 30여 년을 덤으로 살았기에 그저 만족할 뿐이다.


언젠가, 다시 그 묘지를 방문한다면 나는 그날, 30여 년 전, 나에게 깊은 생의 의지와 희망을 주었던 어린 그들의 묘비를 어루만져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날, 나에게 다가와주어서 고맙다"라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라고, "앞으로도, 주어진 것에 자족하며 희망을 늘 안고 살아갈 것이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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