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제일 값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다
나는 그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차에 키를 꽂고 시동을 켰다. 이른 아침, 복잡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도심을 지나 서서히 외곽으로 향하고 있었다. 2003년 6월, 나는 애틀란타 외곽에 있는 호스피스에서 목회상담 인턴 채플린으로 훈련받고 있었다. 그 해 9월부터 에모리 대학교의 신학대학원에서 목회상담학 전공으로 신학 석사 과정을 밟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여름에 이 과정을 마쳐야 했다.
우리 가족은 에모리 대학교 근처 도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4년 동안 살면서 정들었던 버지니아의 소도시 리치먼드를 떠나, 말로만 듣던 애틀란타라는 대도시로 가자마자 적응도 하기 전에 나는 벅찬 일정을 시작한 셈이었다. 여전히 영어라는 지독히도 풀리지 않는 언어로 인하여 미국인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그리고 슈퍼바이저와 함께 일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하루에 거의 1시간이 걸리는 그곳까지 가서, 또다시 낯선 시골에서 운전하며 환자들의 집을 방문하고 호스피스에서 일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하루하루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거기다가, 유학생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경제적인 여건이 늘 한 가정의 가장인 나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힘겨웠었고, 미래를 보면 신이 날래야 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매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수밖에.
그날도 여느 때처럼,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고단한 일상을 시작하였다. 그래도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분만큼은 좋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햇빛은 적당히 따스했고, 애틀란타 외곽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은 힘을 주었다. "아, 빨리 이 과정이 끝나고, 경제적 어려움이 좀 풀려야 할 텐데" 늘 하던 푸념을 하면서 호스피스로 들어갔다. 멋진 애틀란타 도심의 병원이나 호스피스와는 달리, 그곳은 오래되어 낡고 냄새나는 건물이었다. 그곳의 환자들도 전형적인 미국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이었으며, 죽음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일주일 동안에 방문해야 할 환자는 15명 정도 되었다. 그들이 누워있는 병실에 들어가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다행히도 자고 있으면 조용히 기도해 주고 나오면 그만 이었다. 내가 다녀갔다는 사인을 남겨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눈을 뜨고 있거나 의식이 있고, 혹은 가족과 함께 있으면, 나는 그들의 대화상대가 되어주었다. 짧은 영어였지만, 아파서 고통받고 있으며, 죽어가고 있는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들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에 대략 6명 정도씩 미리 스케줄을 정해서 한 바퀴 도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환자 한 명씩 방문해서 말동무가 되어 주거나, 자고 있는 환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하루의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날이 나에게 강렬한 날로 내 가슴 깊이 각인된 일이 일어났다. 전혀 기대하거나, 의식하지도 않은 그 사건 (나는 이 일을 사건으로 표현한다)이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환자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아멘!"하고 눈을 떴는데,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 환자의 침대 위에 놓여있는 액자였는데, 한 젊은 여자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어, 이게 여기에 계속 있었나!" 내가 그 병실을 다녀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바로 그날, 그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이 여자분이 누구죠?" 나는 옆에 있던 가족에게 물어보았다. "아, 우리 어머니예요." 그녀는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어머니라고요?" "네, 그녀가 20대 말쯤 되었을 때였을걸요."
나는 사진 속의 여자와 지금 내 앞에서 의식을 거의 잃고 누워있는 여자를 한참이나 번갈아 보았다. 도저히 믿지 못하였다. 사진 속의 여자는 너무나 예쁘고 매력적이었으며 웃고 있었다. 젊음의 힘이 넘쳐 나 보였다. 그런데, 병상에 누워있는 그녀는 너무나 초라하고 병색이 짙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한 때, 그녀는 오늘처럼 화창한 날에 공원으로 나가 재잘거리며 푸드덕거리며 날아와 앉은 새들에게 먹이를 주며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저 병실밖의 지저귀는 새소리조차 더 이상 듣지 못한다.
"아, 이게 인생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나도 이렇게 되는 건가?" 내 안에서 많은 질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병실을 나선 후, 나는 혹시나 해서, 방문했던 병실들을 다시 들어가 보았다. 병실문을 열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모든 환자들의 머리맡에 그들이 가장 예뻤던 시절의 사진을 담은 액자가 놓여있었던 것이다. 이런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것을 나는 그제야 보았던 것이다. 초라하고 냄새나며 야윈 얼굴의 환자와 그들의 사진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나는 문득 지금의 내 얼굴과 2,30년 뒤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절대동안으로 불리는 젊고 팽팽한 내 모습도, 2, 30년 뒤에는 예외 없이 지금 이들처럼 나도 저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병상 위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 걸을 힘도 없고, 찾아주는 이도 없는 인생 마지막 순간을 보내는 나를 위해, 지금 나처럼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채플린이 기도해 주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순간, 나는 아찔한 전율을 느꼈다. 엄청나게 커다란 기운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내 안에 가득했던 불평, 불만, 부족함, 빈주머니, 욕심, 자만, 이런 것들이 격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기쁨의 외침이 절로 터졌다. "이제 다시 살아가야 한다! 너무나 짧은 인생, 아직은 젊은 지금, 사랑하며 감사하며 열심히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호스피스 건물을 나왔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 나를 감쌌다. 30분 전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저 기분만 좋았던 햇볕이었는데, 이제는 날 살게 만드는 에너지가 되었다. 그때는 들리지도 않았던 새소리도 너무나 분명하게 예쁘게 들렸다. 똑같은 공기였지만, 건물을 나온 후 폐부에 들어오는 공기가 너무나 좋았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더 이상 30분 전의 세상이 아니었다. 밟고있는 풀 한 포기 한 포기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나 다정스러웠다. 세상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그제서야 좀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러한 세상에서 숨을 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이 얼마나 대견스럽고 소중한 존재인 지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1불짜리 지폐 2장이 잡혔다. 그걸 들고 바로 옆에 있던 스타벅스로 들어가 그 돈으로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음료, 가장 싼 스위트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불 한 장도 마음대로 못 쓰고 아끼고 또 아끼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에 돈을 써야만 했었다. 힘겨운 삶의 형편 때문에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을 못 보고 지나왔었던 것이다.
주문했던 아이스커피가 나왔다. "아!" 한 잔 마시며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스타벅스에서 제일 싼 음료였지만, 그날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제일 값비싼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날 나는 온몸으로 경험하였다. 너무나 소중한 나의 젊은 날들을 어떻게 보내야만 하는지, 뼛속 깊이 체득한 날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미래 어느 날, 어느 호스피스에 누워, 지금의 나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미래의 나를 위하여, 나는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날 누군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할 일이 없냐고 물으면, 나는 기꺼이 웃으면서 스타벅스 스위트 아이스커피 한 잔 사달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