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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Mar 05. 2019

밥정이 쌓여야 가족이지

3월 5일


30년 지기 친구가 다시 가까운 동네로 이사 왔다. 한동안 떠나는 사람들만 보다가 오랜만에 돌아오는 사람을 맞는 기분이 꽤 좋았다. 우리 사이에 굳이 집들이 같은 행사 느낌보다는 어릴 때처럼 집에서 아기자기하게 먹고 수다 떠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모습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친구의 어른스러운 모습에 많이 배우기도 했다.


친구가 남편과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맞춰가는 시간을 갖으며 성장한 이야기는 나에겐 분명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친구의 남편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맞벌이로 밖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고, 집에서 음식 냄새가 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결혼 후 집에서 음식 냄새가 나자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와 트러블이 생겼었나 보다.


먹는 게 중요해서 잘 챙겨 먹는 친구와 먹는 것보다는 집에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고 깨끗해야 하는 남편 사이에 간극을 좁히는데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친구가 남편을 설득한 가장 큰 이유는 밥정 때문이었단다.


"아무리 한 공간에서 한 이불 덮고 자면 뭐해. 사람이 마주 보고 함께 밥 먹으면서 얘기 나누고, 그렇게 쌓인 밥정이 얼마나 무서운데. 밥정이 쌓여야 가족이지. 남편한테 밥정 좀 쌓자고 얘기하면서 조금씩 설득했더니 이제는 집에서 같이 밥도 잘 먹고 대화도 훨씬 많아졌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일이다. 별일 아닌 것 같은 이 사소한 일이 훗날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게 될지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오늘도 친구는 내가 떠난 후, 남편과 밥정을 쌓기 위해 저녁을 준비한다고 했다. 사랑과 의리, 신뢰, 믿음 위에 밥정까지 쌓고 있는 친구 부부의 앞날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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