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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Mar 12. 2019

너무 불공평해

3월 12일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 바뀌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거리였다. 두 손에 짐을 잔뜩 들고 있어서 마음도 급하고 보는 눈도 없었지만 무단횡단은 하지 않는다. 내가 큰소리 칠 수 없는 당당하지 못한 일은 안 한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내 앞으로 많은 차들이 쌩쌩 지나갔다. 그 많은 차 중에 경차 한 대가 잠시 내 앞에 서더니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뭐야? 하는 사이, 신호는 바뀌고 차는 급히 떠났다.


누구지?


떠나는 차의 번호를 봐도 모르는 번호였다. 길을 건너서 집에 가는 동안 누구일지 유추해보았다. 수사망이 좁혀오기는 커녕 당최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갑자기 이건 너무 불공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사람을 알아보기 쉬운 조건에서 혼자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고 떠난 그녀.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내가 그 시간에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었는지를 전부 알고 있다. 반면 나는 그녀가 누군지 모른다. 나만 공개된 것 같은 이 억울한 기분은 뭐지?


언젠가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있는데 친구가 정류장에 있는 모습을 보고 전화한 적이 있었다.


"여보세요? 너 OO동에 있어? 오늘 왜 그 옷 입고 나왔어?"


다짜고짜 묻는 내 전화를 받은 친구는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버스 안에 있던 나는 내 모습을 들키지 않았다. 그땐 내가 승리자였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기분이 드는 별것 아닌 짜릿함.


지금은 그 반대 상황이 되어 불길함을 느끼고 있다. 대체 오늘 나를 본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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