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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Mar 13. 2019

일정하게 잘라주세요

3월 13일


내가 점심은 먹었나 생각해보니 점심도 못 먹고 하루 종일 바쁘게 보낸 날이었다. 뭘 하느라 밥도 못 먹었는지 특별히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한 끼만 굶어도 참지 못하는 내가 어찌 버텼는지 대단할 뿐이었다. 뭐라도 간단히 먹어야 할 것 같아 주위를 돌아보는데 마땅히 뭘 먹을 만한 곳이 없었다.   

  

조금만 걸어 나가서 가장 먼저 보이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5분쯤 걸었을까. 낯선 김밥 체인점이 보였다. 분식은 웬만해서는 맛없을 수가 없는 무난한 메뉴다. 아무 고민 없이 들어가 김밥과 떡볶이를 주문했다. 김밥의 가장 큰 장점, 주문하고 얼마 안 돼서 빠르게 내 앞에 놓였다. 김밥을 먹으려고 젓가락을 들었는데 김밥의 크기가 제각각 엉망진창으로 썰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병이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극히 내 생각이다) 나는 뭐든지 바르게 딱 맞는 것을 좋아한다. 김밥도 일정한 크기로 깔끔하게 썰린 게 좋다. 너무 얇게 썰린 김밥은 젓가락으로 집어 든 순간 속에 내용물이 우르르 쏟아지며 돌돌 말려있던 김밥이 힘없이 풀려버렸다. 그 옆에 너무 크게 썰린 김밥은 한입에 넣고 씹기가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김밥을 한입 베어 물고 나면 나머지 반은 또 풀린 김밥이 되었다.    


김밥 한 줄 먹기 참 힘들다고 생각할 때 같이 주문했던 떡볶이가 나왔다. 이럴 수가. 떡볶이도 일관성 없이 두꺼운 가래떡과 얇고 긴 밀가루 떡이 섞여 있었다. 떡볶이는 맞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래떡과 밀가루 떡의 조화라니. 소중한 나의 한 끼는 일정하지 않은 김밥과 일관성 없는 떡볶이로 겨우 빈속을 채웠다.   

  

“계산이요.”하고 말하자 주방에 앉아 계시던 사장님이 뛰어나오셨다. 사장님은 카드를 받으시고는,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에도 없는 빈 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서 대답 없이 넘겼다.

 

‘김밥을 자르시면서 딴생각을 많이 하시나 봐요. 김밥을 자르는 김밥 절단기가 있대요. 김밥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주는 기계라고 하던데, 그걸 좀 사용하시는 게 어떠세요? 그리고 떡볶이도 밀떡이면 밀떡이고 쌀떡이면 쌀떡이지 일관성 없이 섞어서 하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아마 이렇게 속에 있는 말을 내뱉었다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됐겠지. 다음엔 일정하게 김밥을 잘 자르는 OO분식에 가서 김밥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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