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뷰티펄 Mar 25. 2019

웃지 말라니까!

3월 25일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쌓이고 쌓였던 게 터졌다면서 도저히 오늘은 그냥 집에 갈 수없다고 우리 동네로 왔다. 이미 저 멀리서부터 얼굴에는 '나 화났다'하는 게 보였고, 걸음걸이마저 불만이 가득한 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직급이 되고 좀 편해질 줄 알았더니 이젠 상사가 아니라 후배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했다. 나도 겪어봤기에 그 심정 누구보다 잘 알지만 위로는 잠시뿐이다. 결국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이 되고 만다.


친구의 회사에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은 눈치도 꽝, 센스도 꽝, 거기에 청각이 완전 꽝이라서 도무지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가 신입사원에게 '밧데리' 어디 있냐 물었더니, 한참 어딘가로 뛰어가서는 '박 대리'를 데려왔단다. 풉! 나도 모르게 화가 잔뜩 난 친구 앞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미안. 밧데리 박 대리가 좀 웃겨서. 안 웃을게. 계속 얘기해."


신입사원의 줄줄이 이어지는 실수담을 들으며 웃음을 참는 게 눈물을 참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는 쉼 없이 얘길 이어갔다.


"하다 하다 더 이상 걔랑은 대화가 안 통해서 나도 모르게, 에라이! 해버렸는데 신입사원이 '네!'이러고 대답을 하는 거야. 알고 보니 걔 이름이 애란이야. 김애란. '에라이'도 자기 이름 '애란이'로 듣고 대답하는데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또 한 번 "풉.. 풉..."참다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친구는 정말 안 웃긴 건지 웃긴데 참는 건지 모르지만 심각했다.


"아, 정말. 나 웃을 기분 아니야. 웃지 말라니까!"


정말 미안하게도 심각하게 화내는 친구의 모습마저 웃겨서 배를 잡고 웃었다. 웃다가 눈물까지 흘리는 나를 보며 친구는 "에라이!"하고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뭐, 별수 있나. 그냥 "에라이!"하고 털어버려야지.


친구야, 기운 내라. 요즘 여러모로 우울하고 마음 가라앉는 내게 웃음을 주고 가서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 때가 되면 오고 갈 때가 되면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