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집 근처에 있던 옷 수선집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세탁소보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친절한 아주머니는 단골손님들의 사이즈를 잘 기억해주셨다. 맡기면서 굳이 어떻게 해달라고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해주셨는데 떠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떠나셨다.
우리 집 식구들은 옷을 살 때마다 길이를 줄여야 하는 슬픈 신체조건을 갖고 있어서 수선집은 가까이 있어야 한다. 이제 세탁소를 이용해야 하는데 거리도 더 멀고 비싸고 우리의 슬픈 신체조건을 또 일일이 말해야 하는 현실이 싫고 귀찮았다.
그렇다고 옷을 안 살 수도 없고 줄이지 않고는 입을 수도 없으니 새로운 단골가게를 만들어야 했다. 아빠가 새 바지를 두 장 사 오셨는데 역시나 많이 길었다. 세탁소에 맡기고 오라는 심부름을 하러 집 근처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처음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바지 길이 좀 줄이려고 하는데요.”
“어디까지 줄여드려요?”
“98cm요.”
그러자 세탁소 아주머니는 무심한 듯 큰 목소리로,
“98이요? 다리가 그렇게 짧아요?”라고 말씀하셨다.
평소 우리 집 식구들은 ‘짧다’라는 말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키는 작지만 ‘키에 비해서’ 다리가 좀 긴 편이다. 나는 욱하는 마음을 누르며, 그냥 가격만 묻고 나오면 될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덧붙였다.
“저희 아빠가 키가 작으셔서 그렇죠. 키에 비해서는 다리 긴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세탁소 아주머니는 바지 두 장 길이 수선에 6천 원을 말씀하셨고 한 시간 뒤에 찾으러 오라고 하셨다. 정확히 한 시간 뒤, 바지를 찾으러 갔다.
“바지 찾으러 왔는데요.”
“성함이?”하면서 나를 보시더니, “아, 아까 그 아가씨구먼.”말씀하시며 수선이 끝난 바지를 건네주셨다.
별로 다시 가고 싶지 않았던 세탁소였지만 주변에 다른 세탁소가 없어 그 후로도 이용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빠 바지를 들고 가면, “키에 비해서 다리는 긴 아저씨죠? 98cm로?”라고 말씀하신다. 길이를 정확하게 기억해주시고 ‘키에 비해서’를 꼭 붙여서 말씀해주신 덕분에 이제는 단골이 되었다. 이렇게 손님은 사소한 것에 감동받아 계속 그곳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