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뷰티펄 Dec 22. 2018

항생제는 잠든 후에

사소하지만 내 감정입니다

벌써 십 년 전 일이다. 언니와 나, 그리고 내 친구, 셋이 함께 음악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날 오후부터 배가 살살 아팠지만 크게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소화제만 한 알 먹었다. 음악회가 끝나고 여의나루에서 지하철을 탔다. 점점 배가 아픈 느낌이 심상치가 않았다. 음악회에 대해 얘기를 나누려던 찰나에 친구는 나를 보고,    

“너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얗게 질렸어?”라며 놀랐다.


집에 가서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안심시키고 친구를 보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언니는 내가 단순히 체하거나 소화가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배를 움켜잡고 있는 나를 두고 냉정하게 먼저 간다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하철에 혼자 남았다. 도착역에 가까워질수록 배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 손잡이를 잡고 힘겹게 오르다 결국 주저앉았다. 119에 전화를 했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의사는 배를 여기저기 눌러보더니 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이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지만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곧 수술절차를 끝낸 후 수술에 들어갔고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함께 음악회에 갔던 친구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와 밤새 나를 간호해주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항생제였다. 가스가 나오기 전까지 음식물을 먹을 수 없으니 하루 종일 링거를 맞아야 했다. 링거의 주사 바늘도 싫은데 일정 시간마다 항생제를 투여했다. 항생제 주사는 온몸에 약이 들어와 흐르는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 느낌이 너무 아프고 견디기 힘들어서 항생제 소리만 들리면 병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병실에 누워서 친구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간호사가 무언가를 들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아, 싫어요. 안 맞아요.”소리쳤다. 간호사는 어쩔 수 없다며 나를 붙잡고 항생제를 투여했고, 나는 온몸에 불쾌함을 가득 담아 죄 없는 간호사에게 신경질을 냈다.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친구는 나를 달래고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다음 날, 항생제를 맞아야 할 시간인데 간호사가 오지 않았다. 속으로는 내심 ‘이제 항생제는 안 맞아도 되나 보다’ 생각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퇴원하는 날까지 항생제에 대한 비밀을 모른 채 지내고 있었다. 퇴원하는 날 아침에 간호사는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퇴원하시기 전에 항생제 한 번 맞고 가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놀란 나는, “항생제 이제 안 맞아도 되는 거 아니었어요?”물었다. 간호사에게 들은 얘기는 항생제에 대한 친구의 부탁이 있었다고 했다. 잠시 병실을 나갔던 날 친구는 간호사에게 가서 부탁을 한 것이다.    

“환자가 항생제 맞는 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해서 그러는데요. 항생제는 환자가 잠든 후에 놔주시면 안 될까요? 저녁 약 먹고 잠들면 꽤 깊게 잠들더라고요. 그때 제가 와서 말씀드릴게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친구와 간호사의 배려 덕분에 다음날부터 내가 잠든 후에 항생제를 맞게 됐고, 나는 그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들었었다. 그런데 아침에 퇴원을 하게 되어서 그날은 어쩔 수 없이 맨 정신에 항생제를 또 맞아야 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하고 웃으며 간호사와 이별하려고 했는데 항생제를 투여하는 순간 또다시 간호사에게 불쾌한 감정을 전해주고 말았다. 항생제가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은 늘 나를 언짢게 했지만 간호사는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했을 뿐이다.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간호사는 생명을 돌봐주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봐주는 사람에게 더 많이 투정 부리고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모르게 간호사는 늘 친절해야 하고 환자의 몸과 마음의 아픈 부분을 전부 받아줘야 한다고 무언의 압박을 가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환자 가장 가까이에서 의료 처치를 하는 전문 의료인을 서비스직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환자들을 돌보며 누구보다 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사람, 어쩌면 자신이 돌보고 있는 환자들보다 더 아픈 감정노동사가 간호사일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육체적인 노동도 힘들지만 감정적인 부분이 더 많이 지치고 힘든 법이다. 아프다는 이유로 간호사에게 함부로 대한 건 아닌지, 내가 전해준 불쾌한 감정이 그들의 하루를 더욱 힘들게 한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 간호사를 볼 때면 조금 불친절해도 누군가 힘들게 한 사람이 있었나 보다 생각하며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도 환자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까지 하고 있는 아픈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이전 04화 한 걸음 안으로 물러나 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