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뷰티펄 Dec 29. 2018

나는 네가 아니니까!

사소하지만 내 감정입니다


몇 년 전 우연히 철학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말은 모임이라고 했지만 강의를 해주시는 한 분 계셨다. 철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조금이라도 배우려고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철학을 배운다는 것은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던 스피노자의 말처럼 나이가 들수록 철학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고, 다행히 모두들 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이라서 마음 편하기도 했다.    


철학은 단순하게 의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과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학문이다. 또 배울수록 끝이 없었다. 여러 가지 주제로 강의를 들었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머릿속에 남은 건 거의 없다.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에 남은 말은 있다.    

 


어느 날 강의를 하시던 분께서 우리에게 질문을 하셨다.    

“(탁자에 사과를 올려놓으며) 이게 왜 사과인지 설명해보세요.”    

사과를 보고 그냥 깎아만 먹었지, 그게 왜 사과인지 생각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정적이 흘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라서 ‘정답’만을 궁금해했다. 그때 문제를 출제했던 분이 말씀하셨다.    


이게 사과인 이유는!!
포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엥? 이게 무슨 말이야,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모두 웃음이 터졌다. 포도가 아니기 때문에, 수박이 아니기 때문에, 복숭아가 아니기 때문에 사과라고 했다. 듣고 보니 우리가 기대했던 딱 부러지는 정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이런 게 철학인 건지 혼란스럽기는 해도 그동안 배웠던 학교 공부와는 다른 무언가에 재미를 느꼈다.     

그 뒤로 한동안 철학 모임에서는 ‘~가 아니니까’를 패러디하며 말장난을 자주 했다. 오이가 오이인 이유는 고추가 아니니까, 피아노가 피아노인 이유는 기타가 아니니까.    

철학을 너무 장난스럽게 대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덕분에 쉽고 재밌게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평소 남의 기분 생각 안 하고 한없이 속 편하게 해맑은 친구가 있다. 언젠가 심한 장난의  말을 생각 없이 툭툭 내뱉어서 내 감정이 상한 상태였다. 그만하라고 얘기하길 여러 번,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난을 쳐서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 얘기하자고 했더니 친구는,    

“뭘 그런 거 갖고 화를 내고 그래. 그런 것도 이해 못해줘?”라며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어. 이해 못해줘.”

그러자 친구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     

“왜? 그냥 대충 좀 넘겨.”    


너는 그게 쉬울지 몰라도 나는 안 돼.
나는 네가 아니니까!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 개개인은 각자가 자신만의 우주 속에 살고 있다. 조금의 공통적인 부분을 공유하지만 개인 속으로 들어갈수록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삶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너와 나는 다르다는 사소한 진리로 내 나름의 철학적인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로운 삶을 위해 생각에만 머무는 죽은 철학이 아닌, 일상에서 직접 부딪히며 행동하는 철학을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고 공부해야겠다.    

이전 05화 항생제는 잠든 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