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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Jan 27. 2019

LTE급 사과

1월 27일


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 탓에 새로운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여행도 항상 가던 곳만 계속 가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그래서 그런 지역만큼은 여행객이 아닌 실제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다닌다. 오랜 시간 한 지역을 여행한 덕분에 단골집도 꽤 있다.    


그중 한 빵집은 늘 정해진 시간만큼만 영업을 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어도 오픈 시간이 되지 않으면 가게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있었다. 오후 12시가 되면 오픈이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빵을 사다 보면 그날 만든 빵이 소진되어 사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대략 2시간 정도 오픈해서 빵을 모두 팔면 가게 문은 다시 닫힌다. 전국 각지에서 여행 온 사람들은 빵도 못 사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한자리에서 영업하던 빵집이 가게를 확장해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제 가게에서도 빵을 먹고 갈 수 있도록 음료도 판매하고 테이블도 놓는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으나 사실 조금 걱정도 했다. 많은 가게들이 확장하고 직원을 늘리고 새로운 메뉴를 추가하면 가게를 대표했던 메뉴의 맛이 변하고 그러다 단골손님들의 발걸음이 끊기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확장 이전하는 오픈 날에 맞춰 빵집에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성공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오픈 시간 광고를 보고 갔는데 빵이 없었다. 오픈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늘어난 많은 직원들은 빵이 언제 나올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냥 돌아서야 했다.     


얼마 후 빵집 부부는 이제 직접 빵을 만들지 않고 매일 스키 타러 놀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브랜드를 어느 백화점에 팔고 수십억의 돈을 챙겼다는 소문도 있었다. 몇 년 간 개인적인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직접 개발한 빵이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서 그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다시 방문해서 맛 본 빵이 예전에 그 맛이 아니었을 때 한순간에 추억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축하하는 마음과 별개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SNS에 솔직하게 후기를 남겼다. 그러자 바로 빵가게 사장님이 댓글을 남기셨다.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계시는 건가? 진짜 빵 안 만들고 SNS만 하나 보네.’ 생각했다.   

 

“빵이 입맛에 맞지 않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해하고 계신 부분이 있어 말씀드리고 싶어서 글 남깁니다. 여전히 저희 부부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직접 빵을 만들고 가게에 있습니다. 브랜드를 팔지도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루머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부디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LTE 시대라지만 사과도 이렇게 LTE급으로 하실 줄이야. 그것도 넓고 넓은 SNS의 세계에서 어떻게 바로 확인을 하시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고객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았다. 내 추억의 한 페이지가 사라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오래오래 빵과 함께 여행객들의 추억을 만들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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