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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Feb 04. 2019

제기차기도 특기가 되나요?

2월 4일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소개하는 지원서에 취미와 특기는 빠지지 않았다. 쓸 게 없다며 고민하던 사람들은 오천만 국민의 취미인 독서와 음악 감상을 쓰기도 했다. 취미는 그렇다 치고 특기 란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특기를 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국인 특유의 겸손함은 이럴 때 빛을 발한다. 특기에 뭐라도 써내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내가 특기라고 하면 건방져 보일까 봐 망설인다.     


어린 시절, 소심해서 남의 눈치를 잘 보던 나는 특기를 적는 칸에 ‘없음’이라고 써서 제출한 적도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아무거나 뭐라도 써서 내라.”라고 하셨다. 그때 선생님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기차기도 특기가 되나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질문한 나와 달리, 선생님은 온 교실이 울리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제기차기, 좋지. 흔하지 않은 특기야. 아주 좋아.”    


흔히 특기라고 하면 그림, 태권도, 피아노처럼 사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들을 많이 적어내는 친구들 틈에서 제기차기는 뭔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주 유쾌하게 ‘흔하지 않은 특기’라고 말씀해주신 덕분에 그 후로 지금까지 나의 특기 란에는 제기차기를 빼놓지 않고 쓴다. 그리고 선생님 말씀대로 여전히 제기차기는 ‘흔하지 않은 특기’인 건지, 특기를 ‘제기차기’라고 하는 사람을 쉽게 만나지 못했다.    


자신감 없는 내가 내 입으로 뭔가 잘한다고 말하는 게 익숙하지는 않다. 가끔 남이 잘하는 꼴은 그냥 보지 못하고 꼬치꼬치 묻는 사람들이 있다. “제기를 몇 개나 차 길래 특기라고 하는 거예요?” “나도 제기는 좀 차는데, 특기에 쓰긴 좀 그래서 안 써요. 몇 개까지 차 봤어요?”    


“500개요.”    


단순 명료하게 대답하고 나면 ‘헉’하는 표정이다. 학교에서 하는 민속놀이대회에서 전체 1등을 하고, 시 대회, 도 대회까지 나가서 상을 휩쓴 일화를 얘기하면 내 특기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사라진다. 내가 제기를 차기 시작하면 심사 보시던 분이 숫자를 세다가 지치셨고, 친구들은 “너 밥 먹고 제기만 찼냐?”라고 했다. 그 시절 나는 친구들 말대로 밥 먹고 제기만 찼다.     


명절이 되니 TV에 나오는 민속놀이를 보고 아빠가 물으신다.   

  

“딸, 지금도 제기 차면 예전처럼 400개, 500개 찰 수 있어?”


“그럼요. 숨은 차겠지만 차려면 차죠.”


제기차기의 중심잡기는 몸이 기억할 것이고, 나는 내 특기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가며 어떻게든 찰 것이다. 여전히 제기차기는 흔하지 않은 내 특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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