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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Feb 05. 2019

밥 할 맛 난다

2월 5일


오랜만에 큰 아빠와 작은 아빠, 작은 아빠의 아들이 집에 왔다. 항상 조용하던 집안이 성인 남자들이 몇 명 왔다고 꽉 찬 느낌이었다. 점심을 드시고 가시겠다고 해서 밥을 차리고 있는 재료로 음식을 준비했다. 꼬맹이였던 작은 아빠의 아들은 어느새 군입대를 앞둔 성인이 되어 밥상 차리는 걸 돕겠다고 나섰다. 기특했다.    


평소보다 세 배 많은 밥과 음식을 차렸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더구나 편식이 심하고 입이 짧았던 작은 아빠의 아들이 밥그릇을 들고 쭈뼛거리며 내 뒤에 서 있었다.    


“왜?”    


“저기... 밥 좀... 더....”    


동생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를 어려워한다. 더 이상 햄만 찾던 편식쟁이도 아니고, 국그릇 가득 퍼준 밥을 다 먹고도 더 먹고 싶다는 말에 별일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밥솥에 남은 밥을 다 퍼주고, “혹시 너무 많아?” 물었더니, “아니요. 먹을게요.”하며 받아갔다. 또 한 번 순식간에 밥을 비운 동생에게 밥은 없는데 아이스크림은 있으니 더 먹으라고 권했다.    


아이스크림까지 푹푹 퍼먹는 동생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좋았다. 어릴 때와는 다른 듬직한 남자가 되어 상을 번쩍 들어다 주고 이것저것 돕겠다고 다가오는 모습도 예뻤다. 명절에 며느리들이 밥상을 치우다 내가 왜 남의 집에서 이러고 있나 싶어 눈물 흘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며느리가 아닌 딸, 조카, 누나로서 우리 식구들의 밥을 차려줬기 때문일까. 불 앞에서 요리하느라 땀이 나고 바빠도 밥 할 맛 나고, 밥맛도 좋았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며느리로서의 삶은 이것과 분명 다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경험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마음일 순 없겠지.    


식구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아 설거지를 하면서도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했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점점 연세 들어가는 큰아빠와 우리 아빠, 그리고 친구 같기만 했던 작은 아빠까지 흰머리가 많이 보인다. 언젠가 누군가의 빈자리가 생길 수밖에 없겠지만 따뜻한 밥 한 끼 먹으며 함께 보낸 시간만은 남을 거라 믿는다. 내가 식구들을 위해 밥을 하는 이유다.   

 

잘 먹고 간다는 큰아빠의 한 마디, 수줍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어린 동생의 인사 덕분에 미소 짓는 명절을 보냈다.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건강하게 지내다 또 반갑게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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