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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Feb 08. 2019

여행하면서 한 잡생각

무맥락 잡생각

오늘 일본 출장 레포트를 썼다. 거의 여행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되감기를 해보니 나름 우리 브랜드와 제품 생각도 많이 했더라. 레포트 작성하며 일기장을 살펴봤는데 잡생각을 진짜 많이 했고 실시간으로 기록을 했다.

와아 진짜 무맥락 잡생각의 향연이다!


밀크티 타령

동료와 미팅과 미팅 사이 1시간 짬 내어 마셨던 밀크티를 마시는 순간이 너무 행복했었다. 그 순간이 행복했던 이유는 ‘좋음에 대한 공감대’, ‘이 시간이 매우 귀중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인지’, ‘마지막 남은 치크케이크 한 조각을 상대에게 양보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회사라는 곳에서 일을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공감과 존중, 우리가 함께 일하는 지금이 매우 소중한 찰나라는 인지, 배려와 양보가 기초가 된다면 밀크티를 마실 때의 행복함을 매일 느끼면서 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공감은 당하는 것인가 행하는 것인가

공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공감은 일으킴을 당하는 것인가, 능동적으로 공감하려고 적극적으로 애쓰는 것인가. 선택의 문제이다. 이왕이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감하려 애쓰며 살아간다면 아마 더 많은 것들에, 더 많은 일들을 공감하며 함께 기쁘고 행복하고 슬퍼하며 살아갈 수 있다. 함께 기뻐하고 슬퍼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는 뜻이다. 우리 인간은 외로운 존재니까, 서로가 서로를 어루만져 주며 살아간다면 더 좋을 것만 같아서.


아크네 매장에 갔다

걸어가는 길은 추웠지만 풍경은 따스했다. 꽁꽁 담아두고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장면들이 많았다. 아크네 야아모야마 매장에 들어갔다. 사진 촬영이 안된단다. 하지만 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서 몰래 햇살 좋은 영상을 찍었다. (이것만 찍었다) 스웨덴 가정집을 표현하고자 했다는데 스웨덴 가정집을 가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가 없었지만 그냥 좋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크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아크네를 좋아할 때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져서 이유를 다 까먹었다. 브랜드와 진정으로 연결되려면 구매를 해서 '진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머플러를 샀다. 핑크색이다. 마음에 든다!


코스메키친에 갔다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서다. 자연주의 제품샵인데 인상적인 브랜드나 제품은 없었다. 우리 브랜드들이 더 간지 나는 거 같았다. 다 이겨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 곳에선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았다. 별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아쉬움은 없다.


오모테산도에 나만 알고 싶은 장소에 갔다

여전히 따뜻하고 우아하고 은밀하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11월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담백하고 깔끔한 음식, 적당히 기분 좋은 소음, 달콤한 클래식, 도쿄 도심지에 있다는 것을 잊게 해주는 환상적인 풍경. 지금 내가 혼자라는 외로움을 잊게 해 준다. 나는 지금 그저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속삭인다. 세 번째 방문이었다. 늘 혼자였다. 언젠가는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오면 더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노트에 적었다.


가짜 감성

가끔 내 감성이 진짜 내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감성을 파는 사람이다보니 내가 파는 것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고 그래서 더 감성,감수성에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몰라 가짜면 어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좋은 면만 보자고 말한다. 왜? 모든 것에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늘 공존하는걸? 나쁜 면은 무시한 채 좋은 면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 언젠가는 나쁜 면을 정면으로 마주할 상황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좋은 면만 보는 낙관주의보다는 나쁜 면(리스크)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를 더 좋아한다.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객관적으로 비교한 후에 본인에게 더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걸 선택하는 것이 더 주체적인 것 같아.


더 나은 것

좋은 것은 더 좋아질 수 있다

재밌는 것도 더 재밌어질 수 있다

멋진 것은 더 멋져질 수 있다

'좋음의 한계'는 판단하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


국립신미술관

곡선, 빛과 그림자가 눈물 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무려 3층에 프렌치 레스토랑도 있다. 간지 나... 프렌치를 먹으러 왔다. 도중에 잔이 깨졌는데 그 소리마저도 아름답고 예술적이란 생각이 들어 스스로 놀랐다. 와인 한 모금 마시고 취한 거야? 자신의 그림을 파쇄기로 갈아버린 뱅크시가 떠올랐다. 파괴는 곧 창조.


경험 축적하기

지금 이 경험들이 당장 먹고사는 것에, 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축적되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단편적인 경험들은 점이다. 점(경험)과 점이 연결되면 선이 된다. 이야기이다. 선(이야기)이 모이면 면이 된다. 인사이트다. 우리는 그 면(인사이트)을 연결해 자신만의 입체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아마 각자 다른 모양의 뭔가를 만들어 내겠지. 나는 점-선-면으로 숙성되는 속도가 느린 사람이라 미리미리 점을 많이 찍어둬야 한다. 이것이 내가 여행을 합리화하는 방법이다 후후


16만 원짜리 와규가 준 교훈

저녁에 엄청 비싼 걸 먹었다. 거의 1인에 16만 원에 가까운 와규를 먹었다. 교훈을 얻었다. 나는 음식이 1인에 10만 원 이상 넘어가면 맛의 미묘한 차이를 아직 잘 느끼지 못한다.(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거나) 그리고 총체적 경험이 중요한 사람이다. 적당히 우수한 퀄리티의 맛, 분위기, 서비스, 당시의 상황 등 종합 점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국립신미술관에서 먹은 4만 원짜리 프렌치가 16만 원짜리 와규를 이겼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 기준으로 예산을 정해야겠다.

 

사케 셔틀

준민이가 사케 셔틀을 부탁했다. 정확히는 내가 자처했다. 준민이는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는 친구이고 얘는 술쟁이라서 술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얘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얘는 눈물 나게 고마운 것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생사케를 사 오라고 했고, 얘가 마시는 건 왠지 좋을 거 같아서 나도 하나 샀다. 엄청 뿌듯했다. 빨리 만나서 준민이한테 주고 싶다! 그리고 생색내야지. 내가 말이야 이걸 사려고 얼마나 개고생 했는지~~~ 는 훼이크.


혼자 여행하는 것

혼자 여행할 때에는 사색을 통해 나 자신과 더 친해질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있음에 자유로움을 느껴 행복한다. 함께 여행하는 건 사실 꽤 불편하다. 뭔가를 할 때마다 크고 작은 논의, 합의, 또는 설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한을 위임받아도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번거로움을 다 감수해도 좋을 만큼 함께 하는 여행은 아주 많이 행복하고, 그 기억은 평생 동안 큰 힘과 위안이 된다.


시간의 유한성

여행은 시간의 유한성을 강렬하게 느끼게 해 준다. 나는 인간이 유한성을 인지하는 상황에서도 얼마나 나태하고 게을러질 수 있는가를 여행을 통해 늘 재확인한다. 바로 나라는 인간을 통해서 말이다!!!! 에휴

이런 인지하는 상황에서도 나태해지는 것이 우리 인간인데, 우리는 평소 그 유한성을 망각한 일상 속에서 얼마나 나태하게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까. 유한성을 주기적으로 리마인드 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없을까?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로울 때가 있다. 요즘 그렇다. 그리고 난 오늘부터 이제 잡생각을 멈출 것이다.

나는 기계다 기계다 기계다 나는 들어온 인풋만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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