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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Jun 09. 2023

비 오는 날 천진‘낭만’달리기


비가 온다.      


비 오는 냄새가 코에 킁킁 퍼져 설래인다는 지인카톡에 마음이 흩어진다. 비가 좋다고? 비가 올까 봐 설렌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취향이 정말 다르구나를 확인하고 만다. 나는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비가 오면 야외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밖으로 발을 떼기 어렵기 때문이다. 착착 달리기를 하고 땀을 흘려야 하루 루틴이 시작되는데 그걸 못하는 속내가 편할 리 없다.  

    

트레드밀 위를 달리면 안 되느냐고 그게 그렇게 끙끙거릴 일이냐고 집안 식구들은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야외 달리기와 실내 달리기는 확연히 다른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말하는 훈수는 정말 쓸데없다. 나는 밖을 뛰는 게 좋다고, 그게 내겐 덜 힘들고 또 바깥공기를 마셔야 살 것 같다고라고 말하는 게 그들 귀에 닿지 않는다. 이미 우리 사이는 다른 걸 확인할 뿐이다. 비가 내리는 걸 확인하느라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쉽다. 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해소가 될까?     


비 떨어지는 창문 따라 마음에 흩어지는 그때, 번뜩이는 제안이 들어왔다. 어린 시절 비 맞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그때로 돌아가보자고. 같이 뛰는 러닝 그룹에 있는 학당 선생님의 제안이다. 그 선생님은 자신이 청소년에 그러고 놀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노라고, 그래서 다시 해보고 싶다며, 집에 있는 헌 운동화와 장비를 챙기고 있다 하셨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집에 헌 운동화 있고 비도 대략 막을 수 있는 ‘바람막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천진난만하게 나가볼 때다.      

모자 하나면 눈에 드는 빗물을 가릴 수 있고, 바람막이를 입는다면 5km의 거리는 크게 온도변화 없이 뛸 수 있다. 비 오는 날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노면의 미끄럼 상태,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속도만 늦춘다면 오늘 같은 날도 충분히 달리기가 가능할 거라 예측했다. 토독토독 비가 모자챙에 와닿는 기분이 상쾌했다. 빗줄기가 딱 뛰기에 방해된 지지 않을 정도로 착하게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지나는 사람들 옆을 쭈뼛거리며 지나가다 흠뻑 젖고 나니 되려 자연스러워졌다. 그래 나는 우중 러닝을 하고 있고, 비가 오는 날도 멈추지 않는 ‘더 러너’가 된 기분을 느꼈다. 바람막이의 얇은 겹 위아래로 땀과 빗방울이 동시에 맺혔다. 이제 신발 속에도 빗방울이 침투해 양말이 철벅함을 느끼고 있다. 그때 딱 기분이 어릴 때 철없이 비 맞고 돌아다니는 아이의 심정으로 돌아간 듯했다. (이걸 보면 엄마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등짝스매싱을 날리겠지)
 

이는 크루 정기런에서도 비슷하게 느껴본 바 있다. 발 부상이 쉽사리 낫지 않아 몇 주 정기런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오늘 비예보가 있다. 강서구에서 정모장소인 ‘올림픽공원’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삼십여 분 걸리는 가장 먼 장소다. 부상 후 작심하고 나섰는데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다. 이런! 집결지에 제법 빗줄기가 굵다. 여기까지 왔는데 못 달리게 되려나 하고 서운함이 앞선다. 리더가 잠시 기다려 보자더니 십여 분 지날 때 비가 조금 가셨다. 오늘은 젖는  셈 치고 한번 뛰어 봅시다. 우중러너! 낭만 러너! 를 외치고 웅덩이 가득한 길을 뛰기로 한다.      

늘 사람이 많던 올림픽 공원에는 우리밖에 없고, 음악 볼륨을 키워도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대기 중 수증기는 음폭을 확장시켰고, 촉촉한(사실은 축축한) 공기를 온몸으로 맞이했다. 비 오는 날은 그런대로 뛰는 맛이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도전하는 마음, 젖는 번거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어놓는 전환이 있었다. 그런 의외성이 달리기를 더욱 즐겁게 한다. 달리기는 ‘단련’이 아니라 ‘낭만’이다. 천진난만했던 그 시절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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