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는 작가 Jun 12. 2023

운동과 노력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사이렌> 방영후기지만 자기 몸의 한계를 넘어서는 여성에 대한 찬사

   

최근 기 세고 파워풀한 여자들의 예능을 만났다. 체력예능이 대세라지만 ‘피지컬 100’이나 ‘최강부대’에는 쉽게 마음이 붙질 않았다. 나는 소심한 ‘헬스중독자’다. 신체조건이 다른 남성의 몸을 보고 호감을 느낄 정도로 ‘헬창’은 아니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극명한데 그걸 뛰어넘으려는 근육의 신(피지컬 100의 춘리)은 내게 넘사벽(넘고 싶지 않은 벽)이었다. 여성의 눈으로 보는 여성적 몸과 직업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사이렌 : 불의 섬’(연출 이은경, 작가 채진아, 이하 '사이렌' OTT 넷플릭스 제공)은 이른바 나를 위한 ‘취향저격’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6개 직군의 여성 24명과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가 주골자다. 작가도 PD도 모두 여성인 이 프로그램에서 수컷적인 것은 배제된다. 꿀렁꿀렁한 근육자랑도 없고, 또 여성 적인 날씬함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다만 여성이 일하기 힘든 직군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이 자기들만의 리그를 펼쳐 보이는 게 주요 포인트다. 경찰, 군인, 국가대표운동선수, 경호원, 스턴트, 소방관 등 몸을 주로 쓰는 직군의 그녀들에게 홀려 주말 내내 이 예능을 달렸다.   

   

3년 전부터 러닝에 취미가 생긴 나는 보다 잘 뛰기 위한 몸을 갖고 싶었다. 그러려면 근력운동이 필수란 소리에 정적이면서도 목표량을 수치화해서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는 운동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하루 야외 운동 시간이 러닝을 30 ~ 1시간은 무조건 밖에서 보내는 내게 날씨에 불문하고 할 수 있는 운동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집 앞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드나들 수 있는 헬스장에 등록했다.    

  

운동 쫄보인 내가 그곳에서 편하게 운동하게 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다행히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 좋았고, 호랑이보다는 조금 덜 무서운 PT 선생님과 조금씩 운동량을 높였다. 그러다 보니 양 손바닥 셋째 넷째 다섯째 손가락 뼈가 끝나는 마디 부분에 굳은살이 박혔다. 웨이트 근력운동을 하고 난 뒤의 흔적이다. 라운드 숄더에 등근육이 약했던 나는 바벨과 덤벨로 하는 근력운동을 할 때 손의 악력과 전완근의 힘을 주로 사용했었다. 그 흔적은 손바닥에 굳은살로 자리 잡았다.     

 

굳은살이 박혔다 까지고 또 벗겨진 곳에 다시 박히고, 그 과정을 서너 번 반복하고 나니 손마디에 둥글고도 귀여운 자국이 남았다. 그곳은 반대쪽 손가락으로 누르면 반투명한 노란색을 띤다. 단단한 살로 자극에도 아프지 않도록 굳어진 조직이라 그렇다. 누구와 악수할 일이 있으면 스스로 조심하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듯한 상대방의 표정에 장황한 설명을 하는 게 귀찮아서다.(저는 그냥 운동을 자주 하는 독서토론강사입니다. 굳은살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지요.. 하하 웃을 순 없는 법)       

머신에 있으면 나도 왠지 세 보인다 

운동을 한다고 해서 모두 근육을 드러내듯 보여 주는 건 아닌데, 근력운동 3년 차라지만 여전히 몸의 비루함은 어디다 내놓기도 창피하다. 복근과 어깨 근육만 아름다워지길 바랐는데, 하필 손바닥이 제일 먼저 딱딱해졌다. 여자의 고운 손 따위는 포기한 지 오래다. 내가 열심히 운동하고 있음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 마음은 어쩌면 ‘여성적’으로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숨겨지길 바라는 자기 보호와 비슷한 것일 게다. 다만 러닝 크루 모임이나 근력운동모임에서 지기들을 만나 운동 경험에 대해 나누고 나면 공감대를 나누게 되어 황홀했다.      


<사이렌>에서 만난 여성들이 그랬다. 매체를 통해 일방적으로 아는 사이(나도 운동선수들 만나고 싶다.. 김성연 유도 선수 정말 팬입니다)지만, 그녀들을 만나면 하루 종일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운, 다소곳한, 연약한, 예쁜(예쁜 과 아름다움을 구별해 쓰고 싶다) 귀여운 것과 거리가 먼 그녀들이었다. 그녀들은 자신들 만의 제복 속에 같은 일을 오래 한 사람의 ‘단련된 정신’과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의 ‘전문성’을 숨겨놓고 있었다. TV예능에 나올 정도이면, 자신 직종에서 어느 경지에 올랐을 사람들일 텐데, 그들은 그 직업을 선택하기 위한 노력과 또 같은 직군의 사람들과 협력해 팀워크를 잘 이루고자 하는 마음까지 갖추고 있었다.     

 

<사이렌>에서 나는 그녀들이 자신의 업을 위해 공들인 시간을 보았다. 소방관과 경찰관은 외부로 뛸 일이 많은 사람이라 체력이 필수이며, 스턴트와 경호원은 투지와 도전의식, 판단력이 필요했을 게다. 여기에 군인은 적이라 판별되는 대상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회차 중 참가자에게 소화기를 집어던진다든지, 상대방을 자극받도록 심리적 교란을 시키는 장면)을 감행하는데 뛰어나도록 훈련된다. 마지막 운동선수, 나는 이들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에 감탄했는데, 통제조건 속에서 자신을 잘 억제하는 모습, 그리고 상황판단을 빠르게 해내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의지를 주는 것에 감탄했다.      


이 프로그램의 미덕은 ‘암컷들의 투쟁’에서 벗어나지 않는 데 있다. 자신의 영역은 확실히 지키고, 내 것을 지키는 것 외 쓸데없는 공격을 진행치 않는다. 그런 면에서 제작진이 4회 차에서 군인팀에게 진지전에서 과한 액션과 지나친 공격에 페널티를 부과한 장면이 돋보였다. 내 식대로 내 것을 지켜내는 수많은 암컷, 여성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지점이라 여겨졌다. 또 각자가 자신들의 진지를 구축하고 지켜내며, 같은 팀끼리 교감하고 연대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흘린 땀, 그것이 아름답지만 예쁘지 않게 담겼다. 내 손바닥의 굳은살처럼 그녀들 몸에도 움직이며 만든 근육들이 자리하고 있을 거다. 그것을 나는 ‘아름다움’이라 부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비 오는 날 천진‘낭만’달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