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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Jun 07. 2023

뭔가 시작하고 싶을 때 '재미' 한 스푼

기록형 인간이 달리기에 빠지면 일어나는 일



2023년이 바야흐로 밝았다. 올해는 우리 가정에 대소사 중 큰 이슈가 있는 해다. 둘이 만나 스무 해를 살았고, 두 아이를 낳았다. 첫 애가 올해 성인으로서의 첫 관문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으니 올해의 시작부터 집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2023년 우리의 시작을 위한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는데  외할머니가 외손녀 생일에 와서 찬물 떠놓고 했던 의식 같은 그런 행위를 내 스타일로 하고 싶었다. 그게 2023이 찍히는 러닝을 해보는 거였다.


20.23km를 달려보기로 했다. 하프와 비슷한 정도의 거리이니 내 페이스로 2시간여를 잡아야 한다. 새해 첫날 둥실 떠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하는 사진에 기록을 담아보기로 했다. 식구들이 다들 잠든 새 조심히 나섰다. 고수레 부정 탄다고 해가 뜨는 오전 7시 30분경을 놓치지 않으려면 살금살금 그들이 깨기 전 아주 일찌감치 서둘러야 나서야 했다. 아무도 모르게 나갔다 짜잔 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언 손으로 내가 너를 위해 이 정도 뛰어왔다'를 딸애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발을 앞세웠다.


겨울의 달리기는 좀 쓸쓸하다. 풍경이 삭막한 데다 아무리 여유를 두고 시작하고 싶어도, 아이들의 아침 식사를 맞추려면 밤에 가까운 어둠을 배경으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밤거리가 안전한 편에 속하는 나라이기하지만, 캄캄한 사위를 뚫고 가기란 용기 한 스푼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달리기 첫해에는 안전에 대한 남편의 주의까지 들을 정도였다. 더구나 오늘은 까치 설날 결심한 걸 다 하고 돌아와서는 새해 떡국을 한 사발 먹어야지 않나? 어서 가서 일출 사진도 찍고 또 턴해서 집에 와서는 떡국도 맛나게 끓여 대접해야 하는 마음이 분주했다.


초반 3km 뛸 때까지는 손발이 차가움을 느낀다. 10km 정도의 거리를 채운 뒤 한숨 돌리며 주머니 핫팩을 꺼내 들었다. 몸에서는 땀이 흥건히 김으로 나오는 게 보일 정도다. 팔꿈치와 겨드랑이 등 심장과 가까운 신체가 겹치는 부위는 땀으로 젖지만, 얼굴의 드러난 부위는 추위에 경직된다. 오늘 영하 2도로 많이 춥지 않은 편인데도 오전 7시가 되도록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2023년의 새해야 어서 둥실 떠올라라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주변이 주황빛골드칼라로 물들고, 이제 늘 달리는 식물원(한 바퀴에 2km)을 대여섯 바퀴쯤 도니 이제 해맞이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 좋은 자리를 잡고 거친 숨을 가다듬는다.. 드디어 올해의 해가 떠오른다. 해맞이의 벅찬 순간도 좋지만 이제 집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돌아갈 거리 2km를 남기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다시 덥혀지기를 바라며 '나는 안 춥다'를 주문처럼 외며 돌아간다. (사실은 발도 손도 곱는다. 한겨울에 바깥에 2시간 정도 나가 있는 건 살짝 미쳐야 하는 수준의 일이다.)


20.22km를 뛰다시피 돌아오고 막 한걸음 떼고 나이키런앱을 멈출 때였다. 내 다리가 이렇게 롱다리였나. 갑자기 20.23이 아닌 20.24가 찍히고 말았다. 2시간여 공들인 보람도 없이, 올해는 2023년인데 왜 런 기록이 2024로 찍힌단 말인가? 아직 2024년은 오지도 않았는데, 다시 뛰란 말인가? 머리가 아득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어쩔 수 있나. 올해 다시 도모해 보자 하고 혼자 투덜거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남편이 살짝 숫자를 20.23으로 고쳐주기 전까지 이걸 다시 해야지 하는 무거운 마음이었다. 한걸음이 2미터인 사람이 숫자에 연연하느라 이 거리를 다시 뛸생각만 했었다. 남편이 폰 몇 번 만지작 대더니 '옛다'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 씩 웃었다. 20년 전 그때처럼 사랑스러웠다. 내 인생의 구원자로 여겼던 콩깍지가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 6월, 여름 달리기를 준비해야 하는 시즌이다. 여름 달리기는 겨울과는 다른 혹독함이 있다. 몸의 체온이 올라 상기되는 순간을 벼텨야 하고, 또 당장 물 한잔이 아니면 쓰러질 것처럼 아련한 두통의 순간을 맛보기도 한다. 또 땀은 폭포수처럼 흐르고, 선크림과 팔토시로도 기미를 막지 못하는 강력한 자외선도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지난여름에 에어컨을 틀어야 아침식사를 하는 두 아이들이 아침온도가 30도인데 뛰러 나간다는 나를 공포스러운 눈으로 봤었다.


"안 더워?"

"더워. 더우니까 빨리 뛰고 올라고......"

"이해할 수가 없어. 엄마를.... 도대체 뭘 위해 뛰는 거야?"


아이들에게도 설명 못할 행동을 만 3년 동안이나 하고 있다. 뭐 인생을 다 설명할 필요가 있던가? 지속적으로 하는 행동에는 지남철에 옮겨 붙는 쇳가루처럼 저절로 오르는 게 있다. 그걸 어떤 사람은 보람이라 하고 또 '몰입' '물아일체의 경지'라고 거창하게도 말한다. 내게는 그냥 재미다. 내가 하루 어떤 기록으로 달렸는지, 그날의 바람은 어땠고 길에서 본 사람들의 얼굴, 밖의 풍경은 어땠나 기억하는 하루하루 보낸 시간의 의미이다.  



어제보다 잘 달려진 날은 엉덩이가 가볍고, 또 전날 과식으로 못 뛰는 날은 어제의 나를 원망한다. 즉 러닝은 삶이라는 요리에 넣는 한 스푼 '재미'라는 양념이다. 런린이로 기록을 남기고 같이 뛰는 사람들의 기록을 보며 또 주춤한 사람들의 안부를 기다리는 연결이다. 2/4분기용 2023을 찍는 데 성공하고 나니 3/4분기. 4/4분기도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도전과 응전이다. 이 또한 재미있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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