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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Jun 05. 2023

달리기 흥망사(2020년부터 지금까지)

흥망성쇠가 아닌 흥하고 망했던 순간의 이야기 

기록은 경신하라고 있는 건가? 달리기에 관해서라면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4,141km 지금껏 내가 뛰어온 거리이다.  2020년부터 달리기를 기록하기 시작했으니, 아니 달리기 시작했으니 나는 만 3년 동안 지구둘레의 1/10만큼 뛰어온 셈이다. (지구의 반지름은 6400km, 지구의 원주는 2πr에 대입해 보면 4만 2천 킬로미터가 된다) 지구의 몇 개 국을 비행기로 방문해 본 게 다인데 나는 달리기 기록으로 지구의 10분의 1을 지나오다니 놀라울 일이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 러닝 앱을 사용하길 잘했다 싶다. 처음에 자기 페이스를 알기 위해서 사용하라는 운동 전도사의 권유를 따랐을 뿐인데, 그게 시작으로 여태껏 뛰고 있으며 복리 이자가 불듯 기록이 누적되는 걸 보고 흐뭇해할 줄 몰랐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절대적 황사, 미세 먼지 상황이 아니고서는 밖을 나가 뛴다. 달리기에 있어 내가 세운 불문율이다. 부상이 있거나 꾀를 부리고 싶은 날이면 적어도 4km 이상을 걷도록 노력한다.  습관중독자인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처방이 이렇게 지속적일 줄 나도 몰랐다. 


2020년 7월 1일, 내가 달리기 시작한 날이다. 보통 사람들이 달리기를 그만두고 피서를 준비하는 시기, 나는 거꾸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해 여름 815 달리기로 광복을 기념하는 마라톤 기록에 달리기 기록을 누적하자는 지인들 모임에 보태고 싶어 뛰기 시작했다. 역시 내게 있던 수많은 영광의 순간에는 당위성이 붙는데, 남들이 하자는 건 다 해보고, 또 권하기 또한 잘하는 적극성이 그날의 나를 길 위로 내 몰았다. 여름 내 1, 3km를 꾸준히 달리고  왼쪽 눈가 아래와 팔에 갈색 기미가 앉을 때까지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채 땡볕의 길 위에 있었다. 


한강을 향해 큰 발 앞으로!!


때마침 나는 내 안에 있던 운동 역량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끈기의 힘이었다. 운동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활동인데, 이는 꾸준히 하지 않으면 점점 더 하기 싫은 퇴행을 불러일으킨다. (헬스장에 기부만 하고 있는 사람들, 집안의 운동도구들에 먼지가 쌓여 있거나 러닝머신이 옷걸이가 되는 가정의 사례는 너무도 흔한 일이다) 다시 말해 운동은 크게 '재미'가 없다. 게임이나 영화의 이야기처럼 큰 재미나 감동을 주는 순간이 전무후무하다. 더구나 러닝은 땀나지, 얼굴타지 또 무릎이나 허리가 아플까 싶어 아예 시작부터가 어려운 운동이다. 


그런 재미없음이 내게는 참 맞았다. 나는 재미보다는 은근한 인내를 요하는 활동들에 취미를 붙여왔다. 2002년 한국 월드컵 신화가 쓰이는 순간이었던 스무몇 살에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십자수'에 열을 올렸고, 대학교 친구들이 한참 나이트를 가기 시작했던 스물 초반에는 주점에서 예비역 선배들과 시국론에 대해 말싸움깨나 했었던 애였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질끈 묶은 머리로 가방에는 책 두어 권을 넣고 다녔던 나를 하이힐의 똥꼬치마를 입고 동학교를 다닌 여동생은 지금 말로 '노잼'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남들이 재미있다는 활동들은 너무 시끄럽거나 속도가 빨랐다. 그저 나는 혼자 묵묵히 하는 활동이 좋았다. 외국어 공부하거나 페미니즘 이론서 읽거나 가끔 연애하는 남자친구들에게 편지 쓰거나가 내게 있던 낭만적 활동이었다. 운동과 같은 격렬한 활동을 하면 심장이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때와 지금 몸무게가 비슷하므로 바스러질 정도의 약한 체격은 아니다. 그러나 3보 이상 뛰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너무 쿵쾅거리긴 했다) 그래서 살을 빼려는 시도로 시작했던 에어로빅이나 수영, 요가 등은 그러저러한 이유로 금세 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러닝은 달랐다. 아이 둘을 키우고 나니 몸에 붙은 군살을 태우기 위해서라도, 혹은 언제든 집으로 뛰어들어올 지근거리에서 밖을 걷는 활동은 내게 활력을 불어주었다. 다 누적 기록을 쌓으며 혼자 흐뭇해하는 변태적 성향에도 잘 맞았다. 숫자가 는다고 내 통장의 잔고가 느는 것도 아닌데, 나는 러닝기록이 누적되거나 혹은 깜빡하고 기록 시작을 누르지 않은 날에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했는지 모른다. 그 숫자가 늘어가는 게 내게는 아주 중요했나 보다. 또 처음 기록을 누적하기 시작했던 나이키러닝 앱은 얼마나 자주 오류가 나는지 10km를 달렸는데 기록저장이 안 되어 나이키불매운동까지 할 뻔했다. (나이키러닝 앱은 핸드폰 설정에서 앱최적화설정을 해준 뒤 작동시키면 오류 없이 잘 움직인다. 여러 앱에서 사용하는 스파이더프로그램과 충돌하는가 보다.) 


한 걸음에 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한걸음 시작이 다음걸음 도약을 불러온다. 그게 바로 러닝이다. 규칙적이고, 장비를 구하지 않아도 당장 시작할 수 있으며, '걷는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인류종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활동이다. 또 러닝인구가 늘며 달릴 수 있는 길과 마라톤 대회, 최상의 러닝화등이 나날이 개발되고 있다. 웨어러블의 도움을 받으면 6,7시간은 문제없이 방향안내로 뛸 수 있고(나도 아직 여기까지는 해보지 않았다만 가민워치를 사용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마라톤 대회에서 '러너스하이'의 순간과 일체 되는 물아 경지를 느낄 수도 있다. 


나도 모르게 쉬는 날이면 하프를 뛸 시간을 마련하려고 마음먹기를 하고 있는 요즘, 마흔셋에 시작해 중년을 바라보는 내 달리기가 어디까지 펼쳐질지 기대해 본다. 하프를 뛰고 와서 일상생활을 하고 다음날도 다시 러닝을 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오늘의 내가 사랑스럽다. 내 러닝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인사건네고 '파이팅' 응원하는 사람임이 참 맘에 든다. 망하는 일 없이 흥하는 길로 죽 이어지길 바란다. 당신의 길이 내 길과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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