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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Jun 03. 2023

그녀들의 웃음소리만 들렸네

몸 쓰는 걸 몰라 힘겨워하는 나를 보던 선생님들께 

나는 학원형 인간이다. ‘교과서만 공부했어요.’‘혼자 스스로 공부해요.’ 하는 수능 만점자들의 인터뷰는 내게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판타지 같았다. 세상일에 호기심이 많고 또 금세 다른걸 궁금해하는 내게 집중력과 끈기가 생기게 된 건 그걸 지도해 준 수많은 스승님들 덕분이다.  하물며 몸 쓰는 게 세상 둔한 내가 운동이라고 혼자 터득할 리가 만무하다. 나는 운동을 시작하면 바로 적당한 운동 선생님을 찾는 걸 가장 먼저 한다. 


웨이트를 해보려고 시작할 때였다. 3년 전, 정확히 말하면 헬스클럽을 다니며 살을 빼보고 싶었다. 아침 공복 유산소를 하는 습관을 들여가던 무렵이었고, 운동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 음이 들었다. 하지만 헬스클럽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카운터에 ‘운동 배워보고 싶은데 요’라고 말할 때 내 목소리가 점점 기어 들어감을 느꼈다. 내 몸에 대한 소심한 태도는 어릴 때부터 학습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잡하게 움직이던 오 빠 손 아래 여자동생은 오빠와 같이 놀고 싶으나 여자임을 늘 자각해야 했다. 축구를 하면서 무릎이 깨지면 나만 혼났고, 여자가 칠칠치 못하게 흉터를 몸에 달고 사느냐는 엄마 잔소리는 내게만 돌아왔다. 

걷기 전도사 김민영선생님과 함께한 한강나이트워크 42km 중 (2022.7.30)

나의 중고등학생 시절, 체육을 좋아하는 여학생은 자기 정체성을 감추어야 했다. 반장을 줄곧 했던 나는 체육시간이 사실 공포스러웠는데 반 대표라는 명목으로 늘 앞장서야 하는 공포가 깃들었다. 결정적으로 내게 공에 대한 공포를 심어준 것은 중학교 체육선생님 탓이라 할 수 있다. 체육 시간 엉덩이에 배구공을 깔고 앉았는데, 선생님이 앞으로 나와보라 하셨다. 공의 껍질 부분에서 떨어지려 하는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들고 나섰다. 그 뒤 나는 뺨싸대기를 두 대 맞았다. 선생님은 두 가지 이유를 대셨는데, 첫째는 공을 깔아뭉갰고, 둘째는 안 그래도 나달 나달 한 공을 또 껍질 쪽을 들어 더 떨어지게 했노라 진노하며 나를 그 앞에 세워두고 한참을 씩씩댔다.(당신이 가져오라고 해서 내가 그 공을 들었던 게 아닌가?) 그 이후 나는 날아다니는 공, 내 옆에 가만히 있는 공, 모두가 두려웠다. 그 공이 나를 다치게 할 까봐에 대한 방어기제가 생겼달까. 


대학교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환경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은 키를 커버하고 싶은 마음에 늘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다니니 많이 걸을 수도 없었으며 오래 밖을 나가 있는 것도 싫어했다. 또 운동을 잘하는 사람의 활력 같은 게 내게는 전혀 없으니 나는 그저 안전한 집에서 누워 TV를 보고 책을 보는 것을 선호했다. 아 한참 동안은 취미로 십자수나 펜화 그리는 걸 하기도 했다. 스무 살의 나는 술 마시고, 이야기하고 티브이보고 잠이나 자는 사람이었다. 나를 밖에서 운동하는 길로 이끌었던 것은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이자 대학 선배인 그는 잠시도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다. 버스 정거장 3개 정도면 걷는 게 당연하고, 전국의 국립공원이나 산을 자기 발로 밟는 것이 로망인 사람이다. 특히 자신은 운동 따위는 누구에게 배워본 적이 없노라 자신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와 처음 북한산을 올랐을 때, 나는 울면서 내려오며 이 남자와 헤어져야겠다 다짐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조금만 조금만을 외치는 직진형 인간과는 장래를 함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이 뭔지, 내려와 먹는 막걸리와 파전에 그만 이별을 미뤘다. 불현듯 스키를 배우러 갔을 때도 울면서 이별을 생각했다. 처음 스키를 타러 온 사람에게 초급자용 코스를 2번 같이 타보더니 이어 스키는 넘어지며 배우는 거라며 바로 상급자용 코스로 나를 데려간 게 화근이었다. 직활강 코스를 사실 엉덩이로 계속 깔고 온 셈이지만, 나를 이곳에 데려와 이렇게 우스운 꼴을 만든 그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내게는 좋은 선생님이 필요했던 것이다. 운동인지력이 타인보다 둔해서 나는 운동을 몸으로 익히기보다는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해보아야 한다. 즉 운동을 몸에 익히기보다 머리에서 내리는 제어로 진행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알기까지 40살이 걸렸지만, 나는 꾸준히 지치지 않고 내게 운동법을 가르쳐주는 스승님들이 필요했다. 나의 첫 번째 운동 스승은 달리기를 입문하게 한 학당의 ‘김민영’ 선생님이다. 그녀의 블로그에 서 우연찮게 모집한 공복 유산소 공지를 보고 그 모임에 조인했다. 아침식사 전 공복 걷기 달 리기를 하는 모임인데, 2020년부터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아침 마감 시간 전에 하는 운동은 내게 운동할 이유를 제공해 주었고, 꾸준히 하는 사람이 결국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나의 두 번째 운동 스승은 pt 쌤이다. 첫인상이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짧은 커트, 밝은 염색 머리의 그녀는 헬스장 입구의 바디프로필을 걸었던 그분이었다. 그녀와 2년 정도 운동을 같이 했다. 각종 기구 사용법, 내 몸 상태, 그리고 내가 가야 할 운동 방향을 정해주었던 소중한 시간이다. 그녀는 내가 몸보다 머리인지력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고, 고관절경직과 라운드숄더 앉은 모양으로 몸이 굳어 있던 나를 나보다 더 걱정해 준 사람이다.

헬스장의 스미스머신은 여전히 내게는 어렵다. 그래도 놀고 온다. 

나의 세 번째 운동 스승은 최근하고 있는 필라테스 선생님이다. 마스크를 쓰고 만나 야리야리한 외모이리라 상상만 해본 그녀는 수업 시간 계속 소리를 지른다. 아니 한말 또 하고 또 한다. ‘일롱게이션’ ‘정수리를 뽑아내듯이’ ‘치골을 열어요.’‘횡격막은 내리고 등허리로 호흡한 다.’ 나는 처음에 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내 몸 조각조각 움직임을 호령하는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몸을 자각하는데만 6개월의 시간이 들었던 듯하다. (사실 지금도 구령을 듣지만 몸이 그것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이 선생님들은 나보다 내 몸상태를 더 염려하고 격려해 준 사람들이다. 그녀들이 공통적으로 내게 한 말은 ‘긴장을 내려놓고’‘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제발 더 하려는 마음보다 즐기려는 마음’을 가지란 거였다.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의 몸놀림을 보고 그녀들은 웃었다. 아니 고개를 돌림으로써 빗겨 난 웃음을 보여주었다. 내가 민망할까 봐 배려해 준걸 게다. 지금 내가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나도 엄청 큰 소리로 웃겠지. 


 지금은 그녀들이 내게 진심으로 웃어준다. 이걸 해냈느냐고. 대단하다고.. 꾸준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나의 몸개그 같은 어수룩한 몸놀림을 참아준 그녀들 덕분에 나는 이제 몸의 근육을 알고, 어떻게 쓰일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그녀들 곁에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인으로서 매일매일 몸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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