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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Jul 21. 2023

게으른 운동자를 홀린 '스포츠정신'

스포츠중계가 재밌어진 이유



제가 어릴 때는 TV채널이 정규 프로그램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KBS1,2, MBC, EBS로 딱 4개의 채널만 존재했죠. 제가 예능과 오락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꼬맹이 시절입니다. 토요일 토요일이 즐거워!가 하던 때라고요. 그렇게 일주일을 기다렸던 예능 프로그램이 국제적 스포츠 행사가 진행되던 때에는 취소됩니다. 스포츠를 전혀 안 좋아하는 꼬마여자애에게 스포츠 중계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왜 저 운동선수들은 굳이 저렇게 땀 흘려 몸을 학대하는 건가? 저게 왜 재미있나? 스토리가 없는데 시간이 지나 결과만 보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죠.

운동을 싫어하던 꼬마애가 달리기와 근력운동, 필라테스를 하나하나 배워갑니다. 내 몸에 대해 알아가고, 또 몸을 잘 쓰는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코로나 초기 확진자가 1000명 정도 나왔던 때입니다. 확진자가 넘버링되어 발표되고, 그들의 3일 정도의 동선이 일일이 공표되던 시간이었습니다. 운동하러 가던 헬스장에서 확진자가 나왔는데 내가 동일 시간에 운동을 했지 뭡니까? 그 당시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슬며시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왜 퇴근하고 운동을 하러 온 건가? 왜 이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피곤할 텐데 집에 가서 쉬지 않고 늦은 시간 운동을 하러 오는 이유가 뭘까? 내가 마스크를 잘 착용했는지 혹은 땀 닦거나 물을 마시려 잠시 마스크를 벗은 사이에 감염된 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보건소로 가서 검사하고 음성판정이 나기까지 24시간을 안절부절못했었죠.

이제는 해프닝 같이 웃어넘기는 코로나 대처 시기, 도쿄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2020년 열려야 할 올림픽은 세계적 봉쇄로 2021년까지 1년 연기된 상황이었습니다. 1년 동안 불확실한 코로나 치료제 개발은 여전히 미연 했고 예방을 위한 접종밖에는 다른 방어책이 없어 선수들은 마스크를 쓰고 훈련을 한다고 전해졌습니다. 그들은 합숙소 생활을 하면서 외출이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고 전해지더군요. 다년간의 노력을 꽃피울 올림픽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음성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무관중 경기로 응원단조차 조직되지 않았어요. 여름 무더위가 한창인데, 일본으로 떠나는 선수들의 얼굴은 절반 이상 마스크로 꼭꼭 보호되어야 했습니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드라마에 배우들의 맨얼굴이 어색하게 보여 마스크를 CG로 그려야 하지 않나 생각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당시 잠시 서울을 떠나 있기로 합니다. 지난 1년여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아이들은 집에 사육당하듯 강금되었습니다. 작은 아이는 졸업식과 입학식도 하지 못했답니다. 큰 아이는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야말로 찐친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출퇴근지하철과 회사에서 온통 마스크로 가득한 사람들을 만났던 짝꿍 또한 도시를 떠나고 싶어 했어요. 우리는 강원도의 한적한 펜션을 예약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계곡 주변의 인적이 드문 펜션으로 바이러스가 우글거리는 곳에서 탈출을 꿈꿉니다. 잠시 벗은 마스크로 얼굴에 생기가 돌 무렵, 우리나라 여자 배구 선수들의 경기 중계를 봅니다.

이연경이라는 국제적 스타선수는 팀의 결속을 다지는 힘이자 본인 자체가 게임을 이끌어가는 거대한 산 같은 존재였습니다. 세계 여자 배구 리그에서는 누구나 주목하는 선수인 그녀는 때문에 전력이 노출되고 또 쉽지 않은 경기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그녀는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올림픽이라고 발표하고 있었으니 경기마다 비장함이 흐르기도 합니다. 16강 주최국인 일본과 맞붙는데 마지막까지 손에 땀에 쥐는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 끝내 이기는 쾌거를 올렸죠. 가위바위보를 해도 일본을 이겨야 하는 대한민국인들에게 큰 승리감을 느끼게 하는 경기였습니다. 그렇게 4등으로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여자 배구는 그 무엇보다 감동을 주는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직업으로 운동을 택한 사람들, 자신의 인생시간 대부분을 운동에 쏟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경제분석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어떤 분야의 일이건 1만 시간을 투자한다면 일종의 전문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게 그 요지이다. 경기에 참가한 운동선수들의 시간은 1만 시간이 압축돼있는 거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루틴을 세우고 징크스를 깨며 어제의 자신보다 나은 오늘을 꿈꾸며 움직여 온 거죠. 경기가 이뤄지는 시간에는 그 몇백 배에 해당되는 시간과 그것을 지치지 않고 해온 사람의 노력이 들어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제게도 그들의 그런 마음이 여과 없이 느껴집니다. 비가 와서, 몸이 무거워서, 기분이 우울해서, 집에 무슨 일이 생겨서 운동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수도 없이 생기는 때 그 모든 걸 이겨낸 사람의 고지식함이 전해집니다. 운동은 지루한 활동입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근하듯 설득해야 해요. 몸이 움직이면서 느끼는 순수한 쾌감은 운동 시작하고 20~30분이 지나야 느껴지기 시작하고 그것도 일종의 뇌가 나에게 주는 위로 같은 신경물질(엔도르핀)로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죠. 기계의 발달은 우리가 몸을 움직일 이유를 대다수 없애주었고, 편리함이라는 단어는 모든 것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는 키워드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세상에 재미있는 건 얼마나 많게요. 영화, 웹툰, OTT, 유튜브, 에스엔에스 인터넷 기반 생활과 코로나 이후 확대된 인간관계활동 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을 빠르게 보낼 수 있습니다. 뇌는 이런 소모적 활동에도 쉽게 자극을 느끼니까요. 친구들과 보내는 즐거운 술자리만으로도 기분 좋게 하루를 날 수 있습니다. 그런 지금 우리에게 운동인들이 전해주는 감동은 무얼까요? 재미없는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우직함, 디테일 같은 자신의 운동 자세와 기록을 조금씩 고쳐나가는 섬세한 노력들이 아닐까요? 보이지 않는 이런 작고도 단단한 세계가 운동을 시작하는 제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약하지만 그들과 비슷한 걸 느끼고 흘리는 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 때 그들의 시간이 느껴졌습니다. 그걸 해봐야 알게 되는 진정성을 찾게 된 겁니다.

스포츠에는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일 때에만 비로소 아주 드물게 인정받는 세계권 대회에서, 취미로 하던 사람들이 선수들의 노력을 따라 할 때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 실패, 성공, 연결, 연대, 재미 등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300 보도 움직이지 않던 사람이 하프를 뛰게 하는 힘, 스포츠 중계를 보며 쉴 새 없이 응원하고 결과에 관계없이 그들의 노력과 열망은 우리 가슴도 뛰게 합니다. 움직이며 그들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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