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간 마라톤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달리면 될걸 뭘 그리 대회에 돈까지 내며 참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죠.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맛, 그리고 또 굿즈로 기억하는 등등의 일련의 행사가 의미 없지 않나 여겼고요. 내 운동은 내가 알아서 하면 될 일을 복잡하게 사람들 속에서 뛸 필요는 없다고 봤어요. 때마침 코로나로 사람들이 모이는 마라톤 대회들은 사라져서 고민을 덜었습니다.
2023년 3월, 코로나종식 후 저는 동아국제마라톤에 처음 진출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많이도 뛰었던 터라 대회에 입성하는 재미를 느껴보려 딱 한 번만 참석하려 했습니다. 또 올해부터 시작한 크루들이 많이도 나간다기에 정신없이 신청을 하고야 말았죠. 대회 당일날 아침 지하철 역에서 내려 대회장으로 걷는데 뭔가 벅차오르더군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설레어하는 얼굴로 같은 방향을 향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날 저는 10km를 55분에 통과했답니다. 옆에 뛰던 사람들과 함께 한 방향을 향하는 마음, 항상 차로 가득한 큰 도로를 내 두 다리로 우뚝 밟는 벅참, 그리고 세계권 선수들의 주파하는 모습까지 똑똑히 보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함께 하니 이렇게 좋았던 것을 왜 그간 온택트로 혹은 혼자 달리기로만 해왔나 싶더군요. 앞뒤에서 함께 뛰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는 그날의 흥분이 그렇게도 좋았습니다. 그걸 일컬어 '마라톤 뽕'이라고 하는 말도 이해가 될 정도였으니요.
그리고 저는 다시 가을을 맞았습니다. 가을은 '러너의 계절', 지금은 마라톤 폭발기입니다. 이번 9월에만도 크고 작은 대회가 주말마도 2,3개씩 열립니다. 최근 9월 3번째 주말에도 전국에 마라톤이 10개나 열렸답니다. 저도 그중 서울에서 열렸던 '뉴발란스 런유워웨이(Run your way)'마라톤에 참여했답니다. 재미와 감동의 그 길에 참가자로 서있는 마음을 어찌 표현할까요?
깨는 둥 마는 둥 졸린 눈으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사실 새벽에 잠을 깨어서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갔는지 모릅니다. 배를 비우고 편안히 대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그리고 또 나가기 전에 식구들 식사를 챙기고, 집정리도 해둡니다. 엄마러너에게 달리기를 풍족하게 즐기기에는 집안이 편안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지요. 가족들과도 몇 시간 연락이 잘 이뤄지지 않을 텐데 그 편이 내 마음도 편안하고요.
아침 식사를 하지 않지만, 원래 공복유산소를 즐기는 편이니 달리는 동안 배가 고프지는 않으리라 여깁니다. 9시에 시작하는 대회지만 서둘러 길을 향합니다. 장소는 여의도 집에서 30분 걸리는 가까운 대회장에 7시까지 도달하기로 합니다. 우리 크루들과도 같이 만나 사진도 찍고 몸도 풀기로 했거든요. 페이스메이커들도 있어서 이번 대회에 대한 기대도 큰 편입니다. 같이 셀카를 찍는 어색함 따위는 이제 잊게 되었습니다. 저는 20,30대 크루와도 제법 어울리는 편이니까요. 아 떨리는 마음을 1그룹의 '오뜨'님과 나누어 봅니다. 20대의 그녀는 저보다도 더 떨고 있는 듯합니다.
식전행사로 대회의 흥을 돋우기 위해 피겨여왕'김연아'가 왔군요. 은퇴한 뒤로도 자기 관리에 여전한 모습입니다. DJ들의 흥겨운 믹싱과 응원단의 흥겨운 치어리딩까지 제법 행사의 흥이 오릅니다. 그 소리에 출발선에 서있는 심정은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하나 둘 셋 하고 뛰어나갑니다. 아... 군데군데 500, 530, 600 페이스 풍선을 매달은 페이스메이커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회의 감초 같은 역할입니다. 늘 달리던 사람들이 대회참여자들의 기록을 끌어올려주기 위해 같이 뛰는 거죠.
그들의 페이스에 맞추어 저도 발걸음을 힘차게 옮겨 봅니다. 오늘 600을 뛰기로 했던 오뜨님과는 잠시 뒤에 만나기로 했어요. 저는 오늘 530을 목표로 뛸 생각이거든요. 함께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갑니다. 자기 페이스 목표는 자기가 가져가는 거니까요. 다시 나만의 길을 가는 겁니다. 저는 오늘 목표를 하고야 말 겁니다. 같같이 뛰는 즐거움을 나누려 왔지만 또 길 위에는 혼자 서있습니다. 지금부터는 나만의 기록을 위해 혼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9시가 되니 제법 해가 뜨겁습니다. 가을 곡식을 익히는 햇살이라 그런가요? 처음 1,2킬로미터를 평상시 제 속도보다 조금 빠르게 주파합니다. 아직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고 있음을 볼 여유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오늘은 서강대교를 넘어 돌아오는 코스로 10킬로미터를 완주하는 과정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뜨거운 햇살이 오늘의 달리기를 어렵게 할 테지만,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 마음먹었으니 최선을 다해 볼까요?
아 3킬로미터를 지날 때쯤입니다. 심박이 너무 뜁니다. 오버페이스를 했나 봅니다. 오늘 목표를 너무 과하게 세운 것이지요. 최근 2주간 부상이 있어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걸 간과했습니다. 대회참가 초보러너들이 흔히 하는 실수이기도 하지요. 자신의 역량보다 조금 더 앞서 나가게 되면, 초반에 쉽게 체력이 소진되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조언을 듣고서도 흘려듣고 마는 저는 성격 급한 초보러너티를 내고야 맙니다. 서강대교에 진입했을 때 치어리더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새하얀 옷에 부푼 소매, 짧은 치마를 입은 그들은 목청높이 외치며 하늘 높이 점프합니다. 행여 지친 러너가 있을세라 소리를 질러 독려합니다. "여러분 파이팅!" "끝까지 최선을 다해요." "오늘 최고 멋있어요" 하는 치어리딩은 지친 다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됩니다. 다시 뛰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서강대교를 다 통과하고 반환점을 돌면 이제 대회의 반을 지나는 셈입니다. 즉 다시 되돌아만 가면 될 일입니다.
10킬로미터를 뛰려면 3킬로미터까지는 몸을 서서히 풀었다가 중반 4 ~8킬로미터는 자신의 페이스를 마음껏 발휘하는 게 좋습니다. 몸이 풀리는 시간을 주고, 뇌에서 투하될 아드레날린의 힘으로 나머지를 주파할 수 있도록 함이 전략적인 방법입니다. 저도 다음 마라톤 참여를 위해 염두에 두고 지금의 기록을 통해 기억해두려 합니다. 자 아까 반대쪽을 돌았던 서강대교 북단을 통과해 다시 여의도 한강공원나루길에 진입합니다. 이제 정말 골인지점 2킬로미터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 전력질주를 해야 할 때입니다.
마지막은 어떻게 달렸는지 모르게 힘껏 내질렀던 시간이었습니다. 내 심장은 터질 듯 펌핑되었고, 다리의 온 근육이 힘을 발휘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내질렀습니다. 나는 오늘 길 위에 서있고, 또 내 옆에는 각자의 기록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아저씨는 유모차에 2살 된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고, 외국인 참가자, 남녀노소, 선수를 꿈꾸는 엘리트, 누가 봐도 처음인 초보 러너까지 우리는 모두 골인을 향해 한 방향으로 달려 나갑니다.
골인지점에서 기념품 나눠주듯 주는 메달이 그렇게 좋고, 또 달리기가 끝난 후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체온이 서서히 식어가는 과정을 되새깁니다. 오늘의 부족한 점을 잘 생각해 두고 다음에 반복하지 않겠다 다짐도 해봅니다. 또 다른 그룹에서 뛰었을 우리 크루들도 함께 기다리며 맞이합니다. 우리는 절대 혼자 뛰지 않습니다. 오늘 축하 공연에서 '윤도현 밴드'가 와서 대회를 종주한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해줄 때 나는 알았습니다. 윤도현 그가 암을 극복했든 우리도 각자의 힘든 순간들을 극복해 지금 여기에 서 있노라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승리자라고. 그래서 다시 목청껏 노래가사를 잘 알지도 못하며 크게 외칩니다. "나는 나비"
정말 이 맛에 러닝 합니다. 마라톤에서 홀로 뛰되 혼자 뛰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는 함께하나 봅니다. 오늘 이 달큼한 승리감에 나는 다음에 또 마라톤을 뛰려나 봅니다. 행복하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하루입니다.
Run your way! 각자의 길에서 뛰다 또 함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