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부심을 숫자로 보는 패착에 관하여

러너의 자존심은 스스로를 돌보는데서 시작된다

by 달리는 작가

러너로 태어나진 않았으되 러너로 죽고 싶다.


마흔 넘어 러닝을 시작한 나는 그 전의 나와 친근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희귀한 모양새로 비추인다. 라떼는 고등학교 진학시 체력장점수가 있었고, 대다수 만점인 20점으로 패스하지만 워낙에 몸이 둔한 나는 2점 감점을 받는 군에 속했고 울 어머니는 공부를 제법 잘했던 딸이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일찌감치 나를 학급임원을 하도록 해 반장으로서의 추가봉사점으로 만점을 받게끔 기획했다. 이십 대는 바쁘고 귀찮아서, 삼십 대는 출산과 육아에 바쁘다는 이유로 내 몸을 돌볼 새가 거의 없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운동'으로 바꾸고 사는 이후부터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특히 나와 두 살 터울의 오빠는 내 운동 지속성을 꽤나 의심하는 축에 속했는데, 두 아이 출산 후 비대한 나를 곰과 돼지라 부르며 놀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살 좀 빠지면 어떻게든 다시 운동 안 하는 곰이 될 거라 십 대의 나를 놀리던 목소리로 말했다. 몇 년째 계속 달리고 마라톤에도 빠짐없이 참가하는 걸 보고서야 이제야 러너라고 부르며 내게 가민 워치를 선물하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한 정도다. 그리고 다시 찐 남매 모드로 "근데 너 마라톤 4시간 넘는 거 쫌 아니지 않냐? 발전이 좀 있어야지."라고 말하는 얼굴에 '니가 뭘 알아.'로 대꾸하면 그만일 것을 "열심히 하고 있어."라고 대답하고 돌아서서는 내 마음은 긁혀 있었다.


그렇다. 오빠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왜 나는 4년째 마라톤 성적이 이 모양일까? '란 자기반성 중이었다. 운동으로 스트레스 푸니까 나는 참 건강한 사람이라고 자위하면서도, 다시 돌아서서 여기서 조금 더 향상되고 싶다. 열심히 하는데 실력이 왜 안느는 걸까? 라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던 내가 아니던가? 게다가 또 나보다 늦게 시작한 달리기 친구들은 기량이 점점 더 좋아져서 sub4도 sub3도 하는 걸 보고 부러운 마음에 피곤하거나 부상이어도 뛸 준비를 주섬주섬하는 나였다. SNS에도 좀 더 나은 기록을 남기고 싶어 했고 내 마음의 의지력을 알리려 했다. 알고리즘이란 녀석이 보다 센 사람, 더 잘 뛰는 사람들을 늘 보여주며 나를 더욱 조바심 나게 했지만 말이다.

내가 선수하려고 뛰었나? 나는 그저 내가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어서 좋았을 뿐이다.라고 애써 마음을 다잡지만 나도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늘 들었다. 꾸준히 뛰고 계속해서 연습과 훈련을 기록해야 단 1초라도 기록을 줄일 수 있음을 쉽게 생각했다. '꾸준히'는 큰 힘을 가진 단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를 쉬게 하기보다 괴롭도록 다시 움직이게 하며 경직된 태도로 계속 괴롭히는 게 꾸준히라고 생각했다. 나이 들며 몸은 또 점점 퇴화되어 가는데 운동으로 붙잡고서 체력이 소진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대회를 완주라도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쉼과 여유는 없이 나를 달달 볶기만 했으니 말이다.


러닝의 목표 마라톤 대회에서의 성적표가 아니다. 대회를 마친 뒤에 날아오는 랩타임기록이 나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게 아니다. 그날 대회를 치른 마라토너의 한 단면일 뿐, 그가 대회를 나가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이나 먹었던 음식, 몹시 덥거나 추웠던 날의 기온과 풍경, 대회까지 달려오며 자신에게 외쳤던 말들과 현장이나 그의 시간 속에서 응원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마라토너의 자존감은 준비한 대회를 후회 없이 잘 마치고 집에 돌아가 다음의 일상에 잘 복귀할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 대회에 모든 걸 불사르며 뛰겠어 마음먹고 다음날 병원에서 고가의 진료비를 치르고 상당기간 운동금지를 받는 사람들, 현장에서 심폐기능의 오작으로 인해 응급실을 간 사람들의 모습은 자랑스럽다기보다는 안쓰러움을 일으킨다. 처음에 그렇게 소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마음먹었으되 지금 생각이 달라진 건 내게 있어 운동은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단어로 쓰이기 바랐기 때문이다.


나의 런부심은 오늘은 쉬는 것으로 채운다. 하루하루의 러닝을 기록하는 일지에 피곤해서 일찍 잠들어 잘 쉬었음이라 써놓고 스마일스티커도 붙였다. 나를 괴롭히지 않는 달리기,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달리기는 해방을 가져다주면 좋겠다. 주변 러너들을 보고 웃어줄 수 있으며, 대회 당일의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내가 달리는 동안 내 빈자리를 채워준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의미적 행위였으면 좋겠다. 나는 잘 달리는 사람보다 달려서 달라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의 런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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