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촌'사람에서 서울 사람 되기

시티런을 하는 동안 서울은 내 땅이라고

by 달리는 작가

"이사를 사야겠어. 경기도권으로."

남편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무겁게 내뱉은 말임을 짐작하면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는 경기도의 내 집은 전세를 내어주고 우리는 또 서울서 월세살이를 하고 있는 메뚜기서울시민이다. 짝수년해의 봄이 되면 매번 한계라면서도 집세를 올려주고 계약을 연장해 왔는데 남편은 자신의 퇴직이 한해 한해 다가올수록 지금의 벌이에 대한 위기감이 든다며 목돈을 대출받기를 그만두고 내 집으로 돌아가기를 마음먹는 눈치다. 남편의 빈곤한 경제사정만큼 내가 뱉을 말이 궁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리 부부의 고향은 광주로, 신혼부터 20주년을 넘기는 지금까지 서울 강서구에서 터를 닦았다. 서울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희망했고, 내가 다니던 전 직장이 있는 강서구에 신혼집을 얻었던 것에서 시작,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는 전학시키지 않기 위해 같은 아파트에서 자금 사정에 따라 이사 혹은 월세계약을 연장해 왔다. 거주의 안정감은 없었지만, 서울 사람으로 산다는 부심은 고향을 다녀오며 보는 올림픽 대로의 반짝이는 아파트들의 불빛을 나도 하나 밝히고 말겠다는 희망의 불씨로 남기곤 했다. 언젠간 나도 한강변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식의 부를 이루겠다는 꿈이 있었다.


서울의 집값이 휘청휘청 오를 때마다 시골 사는 양가의 노인들은 살 곳 없이 이년마다 집걱정을 하는 우리 걱정을 했다. 50년 넘는 결혼 생활 동안 한집에서 살아온 시댁과 20년 전 이사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사를 하지 않겠다는 친정 어른들은 노매드처럼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우리의 사정을 안쓰럽게 여겼고 이웃 자녀들이 서울에 집을 장만해서 그 차액이 크게 올라 부자가 되었다는 부러움 섞인 정보를 전달해 다시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외벌이지만 연봉의 수준이 고액인 남편의 벌이로 부족함 없이 살았지만, 저축으로 오르는 집세를 감당하기에도 늘 벅찼다. 또 학부모로서 내 눈은 얼마나 높았는지 인문학을 공부하면서도 아이들 성적 향상을 위해서 학원 두세 개는 늘 유지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이라 생활비는 늘 쪼달렸고 가욋돈 따위를 바랄 여유 없는 마음의 가난함에 부부사이마저 소원하기 일쑤였다.

취미로 시작한 러닝이 삶의 지표처럼 내게 크게 자리한 이후, 내 꿈은 좀 달라졌다. 내가 좋아하는 게 선명하게 잘 보일수록 지금을 잘 누리고 행복하기를 꿈꾸는 사람이 되었다. 집에 대한 추구미도 소유에서 편하고 아늑한 곳이면 잘 누릴 수 있으니 좋다로 바뀌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잡히지가 않았던 서울살이의 매력을 내가 더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열리는 큰 마라톤 대회를 거치며 나의 지리적 감각이 더 깨어났다. 상암에서 시작해 양천 여의도를 거쳐 마포와 동대문 광화문과 천호, 하남까지 서울 시내를 43킬로미터 뛰면서 보다 보니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처럼 내가 땀 흘려 뛰어 본 서울 도심거리들이 내 것처럼 가까워졌다. 25년째 서울에 주소를 두었어도 잘 몰랐던 곳들이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애착으로 바뀌었다.


또 서울 시티런은 어떠한가? 남산의 가파른 북쪽 순환로와 북촌의 고즈넉한 골목길, 경복궁의 화려한 파사드며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도시 풍경을 느끼는 명동런까지 러너들이 자주 방문 하는 한강대로 외에도 서울은 걷고 달리는 사람들의 천국이었다. 거대 도시 풍경을 직접 밟고 그 속에 하나가 되어 본 사람은 안다. 거대 도시의 실체가 생각보다 진귀한 구경거리라기보다는 내가 겪고 경험할 때 나의 추억의 일부가 되어 내 자산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까 참가비로 적지 않은 돈이 든다면서도 또 연습하며 내 시간을 그만큼 써야 하는 걸 불평하면서도 기꺼이 내가 겪어 내가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을 소장하기 위해 추위더위폭우폭염에도 뛰고 있는 거다.


다른 방식으로 서울을 사랑했던 남편은 나와는 확연히 다르다. 25년이 넘도록 가정에서 직장까지 1시간 넘는 통근거리를 가졌던 그는 사랑하기에 너무 먼 당신인 서울에서 버티고 있는 셈이다. 역사와 미술전시를 좋아하는 그로서는 서울은 그냥 가끔 와서 놀면 되는 관광지다. 좋아하긴 했지만 가질 수 없는 서울, 그렇다면 내가 살기 편한 곳에서 떨어져서 구경만 해도 불편함이 없는 그런 마음일 거다. 잠시나마 서울을 소유했던 나와 소유하지 못해 포기해 버린 남편 사이에서 오늘도 집값이 오른다는 뉴스는 공허하게 방구석 티브이에서 흘러나온다. 갖고 싶다 서울.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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