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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뛰는 사람의 철학

by 달리는 작가

사위가 아직 밝지 않은 겨울 새벽길은 고요하다. 영하의 볔은 길까지 얼어붙어 인적이 드물다. 그래서 멀리서 사람형색을 보면 두려움과 반가움이 공존한다. 오로지 반갑기만 한 사람도 있었으니 그는 반대편에서 이곳 식물원을 자주 찾는 남자러너다. 이름, 얼굴도 잘 모르는 그 러너를 이곳 식물원에서 만난 지 여러 날이다. 뛰기 좋았던 가을, 길가 낙엽처럼 많았던 러너들이 사라지고 북풍한파를 견디고 겨울나무에 겨우 살아남은 이파리정도의 늘 뛰는 사람만 살아남았다. 얼굴도 반 이상 가리고 온몸을 싸맨 그를 주황색 비니로 식별할 뿐이다. 멀리서 주황빛이 가까워지면 나도 반가움에 몸에 훈기가 도는 듯하다.


중년에 들어해야 할 최우선과제들은 새벽에 먼저 하도록 설정해 둔다. 바쁜 현대인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다발로 할 때 우선순위가 아주 중요하다. 가장 먼저 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다. 봄에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겨울한파에도 쉼 없이 스스로를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43킬로미터를 다섯 시간 컷오프 안에 들어오고 싶다면 추위를 가릴처지가 못된다. 가릴 수 없는 눈가가 눈물로 터지고 손발이 곱아 오전에는 부엌 칼질이 쉽지 않아도 바깥운동을 지속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로 한다. 적당한 타협으로 실내 트레드밀을 할 수도 있지만, 오늘 한파를 견디면 다른 것들도 문제없이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에게 필요한 게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의지 아니던가


알코올 중독자들이 가득한 집안에서 건강 칼럼을 쓰면서도 줄담배와 고주망태로 살았던 칼럼니스트 마이클 이스터는 본인의 책 <편안함의 습격>에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내게 있어 안온한 집을 벗어나 어둡고 추운 새벽길 밖은 생경한 불편함이었다. 얼굴을 뒤덮은 마스크 안의 호흡이 겉면에 얼음조각을 맺히게 할 때 나는 내 숨과 그 안의 수분을 발견하고 우쭐감에 기뻤다. 빙판이 숨어 있는 길을 골라 발디디며 발바닥 감각을 깨웠고 얼음을 탈탈 털며 내 뿌듯함으로 채운 자긍심이 조금씩 자라난 게 아닐까?


달리기 페이스가 쭉쭉 느는 사람들과 달리 나의 달리기는 일종의 수행과도 비슷했다. 다리근육이 생기고 햄스트링이 아프질까 골반정렬과 고관절 유연성까지 내 몸의 구조와 가동성, 훈련강도와 역치를 깨뜨리는 과정은 책상 앞서생으로 공부하는 걸 좋아하던 나를 비웃듯 매번 어렵고 험난했다. 머리로는 입력이 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과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난 것인 양 느껴지면 무력감에 피곤이 더해졌다. 몸은 뇌가 관장하는 영역 아니던가? 알겠는데 왜 안 되지? 열심히 하면 향상이 보답되는 게 아니던가? 뛸수록 발이 감기기도 했고, 다리피로도로 무기력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나는 내 몸을 다시 알아간다. 학습하고 깨친다. 한계점에 닿을 때 드는 생각, 내가 성실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고단하게 내모는 징벌적 상황, 불안할 때 택하는 억지선택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아끼는 방법은 뛰고 난 뒤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스트레칭으로 풀고 스스로의 훈련과정을 기록해 복기한다. 인간의 본성인 달리기를 하되 뛰는 나를 공부한다. 남과 비교치 않으며 타인의 향상을 의식하지 않는다. 아. 머리 쓰기보다 어려운 몸 쓰기 연구과정 이여. 나의 레이싱 연구는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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