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뛸 용기가 필요한 너에게

나만 못 뛰는 것 같을 때 읽는 글

by 달리는 작가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 하물며 내 몸마저 내 말을 안 듣는 나이가 되고 보니 아. 옛날이여 주문처럼 외울 형편이다. 게다가 러닝이 대유행이 되면서 #오런완#런스타그램#같은 태그를 타고 타인의 기록과 멋진 사진들이 쓰나미급으로 들이닥친다.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세상에는 멋을 추구하며 각종 코스프레를 하고 뛰어도 나보다 훨씬 더 즐겁고 화려하게 잘 뛰는 러너들이 많구나 새삼 느낀다. 알고리즘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잘난이들의 정보를 물어다 준다. 짜증 나게.

부상이 생겼거나 쁜 일상덕에 잠시 쉬고 있는 나에게 계속해서 전해지는 타인의 기록들은 안 그래도 낮은 내 자존감을 더욱 누르고 있다. 내가 선수하려 시작했나 뛰다 보니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던 거지라며 마음을 다잡아보건만 좀 핑계 같다. 나도 잘 뛰어서 자하고 싶었다. 사십 대 후반에 내 몸은 되려 더 성장하고 있어요. 이렇게 러닝하면 신이 난답니다 뽐내고 싶었다. 하나 내 몸은 의지와는 다르게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허우적대며 연습하고 다시 기를 써보건만 한번 튀어 오른 심박은 내릴 줄 모르고 다리는 무겁기만 하다. 연습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나이를 갑자기 한꺼번에 먹었나. 때려치우기엔 너무 아깝고 잘하잖아 무척 버거운 상태다.


대회날을 휴대폰 일정알람으로 세팅해 두고 나는 잠시 2,3년 전의 나를 찾는다. 사진첩 속의 나, 대회를 기록하며 적어두었던 내 마음을 찾아간다. 그 안의 나는 지금의 지친 내게 말 걸어온다.


"오늘 하루 날 위해 보낸 이 소중한 시간을 기억해.

아이들 아침식사시간이 늦을까 봐 돌아오며 더 빨라졌던 페이스를 봐. 너를 믿어. 기록이 말하잖아.

넌 할 수 있어.


무더운 여름 아이들을 7시 30분에 등교시키기 전 한 시간의 러닝타임을 이어왔던 때였다. 7분대 페이스에서 6분대에 진입하고 때로는 5분대 페이스까지 뛰었으니 자랑할 데는 없어도 스스로 굉장히 뿌듯했다. 연일 기온상승이 기록을 경신할 때 내 러닝속도도 덩달아 빨라졌는데 나는 학창 시절보다 더 잘 오래 달리고 있던 나에게 감탄하고 찬미했다. 이러다 중장년 마라토너 선수가 되겠네 하고 우쭐대기도 했다. 부모님이 늦게 터진 재미에 얼굴 그을리는지도 모르고 뛴다며 그 나이에 '하니'라도 된 거냐며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지만 그것도 좋았다.


내가 그렇게 달리기를 좋아했구나. 지금은 그 당시에 가장 잘 뛰었던 속도로 조깅을 하는데, 나는 그보다 더 잘 뛰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상승이 아니라 지속을 꿈꾸는 러너라고 하면서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계속 성장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건 지속해서 유지하는 힘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면 된 건데 거기에 왜 안되는지 바쁜 일상은 그대로 유지한 채 더 잘할 방법을 추구할 수는 없는지를 갈구하고 있었다. 다음 대회까지 카운트다운하며 대회가 닥쳐올수록 초조해하고 끙끙댄다. 연습하고 있는데도 더 잘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갈군다.


취미에 왜 그렇게 연연해하는 줄 모르겠다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서 지금도 건재한 나를 찾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건지도 모른다. 나 혼자서도 잘해왔던 대회 운영과 운동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내 몸쓰임새를 배우던 기쁨이 컸었다. 운동은 펼쳐진 책과 같아서 내가 집중해서 연결할 때 가장 큰 시너지가 났다. 대충 회차를 채우거나 스피드를 붙여 시간을 채우는 활동으로 하기만 했다. 잘하지는 못해도 계에속 하고 있어요 하는 나의 낮은 통과선을 넘기면 그대로 만족! 하며 잠도 안 자고 영양성분도 잘 섭취하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나의 에너지, 나의 움직임 모두 내가 정할 수 있었던 건데 나 좀 잘못하고 있었다. 흠뻑 빠져보자. 초심보다 성장보다 진심으로. 나는 나를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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