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달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페이스를 관찰하고 유지하는 힘이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언제 뛰어야 할지 당황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잘 뛴다. 신호등 점멸 사인이 깜박거릴 때, 멀리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가는 순간, 중요한 약속 시간에 지각과 정시 도착이 간당간당할 때 우리는 오랜 시간 앉아 생활하던 골반과 고관절을 풀가동해 비로소 뛴다. 포탄조각과 탄환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지인이나 전우를 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뛴다. 뛸 수 있는 잠재력을 다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잘 관찰하지 않거나 유지하지 않아서 지금의 좌식생활, 혹은 와식 생활에 길들여졌을 뿐이다. 그야말로 편리함의 습격에 길들어진게 아닌가?
러닝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우선 자신의 페이스에 대해 아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5년을 달려도 제자리 페이스인 내가 그들에게 조언할 위치도 아니지만, 어쨌건 지금 현 위치를 아는 건 아주 중요하다. 새해 다짐으로 운동, 그것도 달리기를 할 거야 마음먹은 사람들이 러닝화나 운동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 내 몸상태를 아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게다. 즉 내 몸 상태가 소형경차 수준인데 장비만 중형세단 차에 어울리는 고급 바퀴며 겉만 번드레한 수 있는 외장장식용 브랜드 바람막이를 걸쳐 봤자 '영포티'라는 조롱만 받기 일쑤다. 나이 든 사람이 가진 미덕중 하나 '지속력'을 낼 수 있도록 장기전에 돌입하려면 무엇보다 내 페이스를 처음부터 아는 게 첫 단추다.
페이스(pace)란 1km 거리를 기준으로 그것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숫자가 작을수록 빠르게 뛰는 사람이다. 630은 1km를 뛰는데 6분 30초가 걸리고. 500은 5분이 걸린다. 선수들은 3분대 페이스로 훈련한다. 운전을 하거나 물리학에서 배운 속도 개념은 이동거리/걸린 시간으로 1시간에 얼마나 가는지를 측정했다. 80km/h는 한 시간에 80km를 달리고, 50km/h는 한 시간에 50km를 달리는 속도이니 이는 숫자가 클수록 빠름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속도 개념은 자동차나 철도, 즉 기계가 일정시간에 달리는 거리를 측정코자 하여 쓰였다. 기계는 고장 나지 않으면 계속해서 달릴 수 있으니 시간 내에 빨리 가거나 더 멀리 가는 기능을 높이 쳤다.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일정 거리 이상을 달리면 탈진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러닝 대회는 많이 가는 게 목표가 아니라 정해진 거리를 빨리 달릴 수 있는 추진력, 그리고 이것에 익숙해지면 장거리에서 보다 일찍 도착하는 사람들을 높이 친다.
처음에 러닝을 시작하면 페이스란 개념에 혼란스럽다. 그럴 때 나는 단순하게 장비를 들이는 것으로 손쉽게 해결하려 들었다. 그래서 스마트 워치를 꽤나 오래 사용하고, 내 나이에 기능이 복잡하다고 주변인들이 말렸던 가민 러너스 265도 빠르게 적응했다. 연비는 좋지 않으나 장비는 척척 들이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나 같은 패착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손쉬운 페이스 측정법을 알려준다면, 자가측정방법이다. 5 아주 편함 숨 고르며 대화 가능/4 편하지만 운동됨 문장 대화 가능/3 보통 조금 빨리 뛸까 고민됨/2 힘듦 짧은 말만 가능/1 매우 힘듦 말 거의 불가 5점 척도로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거다. 나는 대개 이 정도 자가 측정법에서 4와 3 중간에서 운동하곤 한다. 운동의 보람도 느끼지만 기분도 좋아지는 게 좋아서다.
사람들은 존 2 러닝이니, 500 페이스로 30km 이상을 뛰어야 러너스피릿을 느낀다고 떠들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나의 러닝을 타인의 러닝과 늘 비교하려는 상태에서 시작된 불안에 대한 대처가 아닌가 싶다. 참고로 이봉주 선수는 현역시절 마라톤 연습을 하며 '러너스하이'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지만, 은퇴 후 슬로러닝(그렇다고 해도 일반인보다는 빠르다)을 하면서 느끼고 비로소 러닝이 좋아졌다고 했다. 엘리트 선수들이 늘 죽자고 기록경신을 위해 달리는 것과 일반 러너가 내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천천히 달리는 것은 완벽히 다른 게임 아닐까? 우리가 모든 취미 활동을 전문인, 직업인처럼 한다면 거기서부터는 취미가 아니라 욕망의 족쇄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평균 페이스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다시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신체조건과 심리상태를 가진다. 다양성의 세계는 러닝에도 존재한다. 나만의 목표로 스스로를 향상하기 위한 태도 그것만 높이 사면 될 일이다. 모두 다 서브 3, 서브 4를 위해 달려가지 않는 것. 자신의 몸상태를 자각하며 평정심을 놓치지 않고 지속적인 운동을 하면 된다. 그렇다면 거기서 얻어지는 행복감에 스스로 충만해질 수 있다. 러닝이라는 게 자기만족적 행위 아니던가? 뭔가를 극복하거나 타인을 돕는 행위와는 다른 자기 상태를 잘 아는 것이 오래 뛸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이라 볼 수 있다. 평균페이스를 알고 그것에 잘 정착하면 거기서 발전, 혹은 머무르며 재정비를 하거나 마라톤에서의 기록정비를 꿈꿔보면 될 일이다. 마라톤 대회에서 잘 뛰려고 러닝을 시작한 사람이 있을까? 엘리트 육상 선수 아닌, 일반 러너들은 다 뛰다 보니 잘 뛰게 되더란 사람들인데 말이다.
마라톤에 참가하면 별별 사람들이 다 있는데, 특히나 감동스러운 장면은 시각장애인 가이드러너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페이스를 넘어서 타인에 맞춤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다. 시각장애인과 끈으로 손목을 연결해 가이드러너 2인과 장애인러너 1인이 한 팀이 되어 달린다. 가이드러너가 2인 이유는 가이드를 하면서 끊임없이 시각장애인에게 주변 상황과 그의 몸상태, 남은 거리와 페이스안내까지 수시로 전달하기 때문에 대회에서 느끼는 피로도가 상당해서이다. 교대 후 옆에서 대기 중인 가이드러너는 자기들이 달릴 수 있는 안전거리 확보와 만연에 있을 사고에 대비하는 사람이다. 즉 한 사람은 시각장애인 러너에게 집중하고, 다른 사람은 주변상황으로부터 시각장애인 러너를 보호한다. 세 사람의 주행은 혼자 자기 몸만 건사하는데도 힘든 일반러너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들이 대회를 마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완주자와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의 장면을 볼 수 있다. 가이드러너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주행을 했고, 장애인 러너들은 자신도 몰랐던 한계를 깨뜨렸으니 그야말로 감동의 현장 아니겠는가?
나의 페이스를 아는 사람은 자기 조절과 도전의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을 수 있게 된다. 내 몸에 익숙한 페이스를 알면 그때 주행거리를 늘려 체력을 기르고, 다시 조금씩 빨리 뛰는 연습으로 페이스를 올리는 시도를 하라. 그것도 자신이 그럴 마음이 생겼을 때 도전하라. 타인의 기록에서 비롯된 질투나 시기, 경쟁의식으로 내 페이스를 따라 올리거나 스스로를 과신하지 말라. 나는 내 속도와 방향으로 주행하고, 타인 또한 그것을 추구하면 될 일이다. 러닝 하다 보니 페이스에 신경 쓰게 되었지 페이스 올리려 러닝을 시작한 게 아님을 주지하라. 편한 러닝말로 펀(재미있는) 러닝을 하라. 성취감이 내 재미이거나, 만족감이 내 재미라 해도 뭐만 사람 하나 없다. 그야말로 나의 페이스는 내가 정한다.
오늘도 600페이스에 익숙한 러너는 훈련하며 500페이스로 400m질주하는 데서 숨을 허덕였다. 멈춰설 때 코치가 안타까움에 소리쳤으되, 나는 내 머리끝까지 경고음이 울리는 것 같았고 이걸 계속한다면 죽을지도 모르겠다 느꼈다. 목구멍에서 피냄새가 올라오도록 뛰어본게 얼마만이던가. 그렇게 한참을 심장벌떡이며 있다가 또 금새 괜찮아지니 다시 600으로 몇바퀴를 뛰어도 행복해서 방긋방긋 웃었다. 훈련한 보람이 없어진다고 안타까워 하는 코치님 앞에서 '저 좀 천천히 스근하게 계속 올릴 게요' 하고 냅다 도망쳤다. 나는 내 페이스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