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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스턴휴 Apr 07. 2022

일기-05

Wanderlust.06

미국 와이오밍 부근 2012년 즈음...


와이오밍이라,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라, 아메리칸 들소들의 땅이라 불리고 서부 개척자들 또는 네이티브 인디언들의 땅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대한민국의 2.5배는 넘는 면적에 인구는 단 50만 명이라, 내가 딱 좋아하는 사이즈의 땅과 인구 규모이다. 나는 이곳을 놀기 좋아하는 부탄인, 신중한 네팔인과 2012년 즈음 방문했다. 방문하자마자 나는 바로 이곳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이렇게 넓은 대지와 들판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에서 마음껏 노뉘는 들소들과 산양들 그리고 아메리칸 순록과 불곰들이라니, 이곳에서 사냥이나 낚시는 결코 레저스포츠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석양이 지고 어두컴컴한 밤에 옐로우스톤에 진입했다. 도로를 거니는 야생동물들의 빛나는 눈들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그 큰 아메리칸 순록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 진땀을 뺐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세명의 초보 캠핑인들은 텐트를 치고 말 그대로 별들이 수놓은 밤하늘 아래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곳의 여유로움은 나의 기분을 카우보이로 만들었다, 할리데이비슨 오너로 만들고, 또 서부개척시대의 총잡이로 만들었다, 대지에 길을 잃은 방랑자로 만들었다. 와이오밍의 옐로우스톤은 그런 곳이다. 가장 악독한 자연 파괴론자, 기술 숭배론자들도 단숨에 기술 파괴론자, 자연 숭배론자로 만들어 벌 일 풍경을 지닌 곳이 바로 그곳이다.


나랑 같이 간 네팔인은 사실 근본은 티베트인이다. 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세계의 방랑자이다. 중국에서 티베트를 얼마나 억압하는지 실체를 알고 나면, 달라이 라마가 왜 인도로 망명했는지를 알고 나면, 티베트인들은 제 조국을 등지고 방랑하는 면에서는 가히 유럽의 집시나 유대인 민족과 괘를 같이한다. 티베트인들은 억압받는 중국 치하 아래 신분증도 여권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그도 태어나긴 인도에서 태어났으나, 유년시절은 네팔에서 보냈고, 학창 시절은 또 인도에서 보냈다. 여러 가지의 국적을 가진 그는 대학교육을 받으러 미국에 왔고, 미국은 이런 망명 티베트인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다. 그가 어떻게 미국으로 입국했는지, 자세하게는 알지 못하나, 네팔로 돌아가서 아버지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그 이후로도 네팔에 돌아가지 않은 것을 보면 대충 짐작은 간다. 그의 가슴속에 맺힌 한이나 슬픔의 크기도 얼만지는 알지 못하나, 나로서는 지레짐작할 뿐이다. 와이오밍은 그런 사람들의 공간이다. 고향을 떠난 서부 개척자들이 떠돌던 곳, 아니면 고향을 잃은 네이티브 인디언들이 대거 모여든 곳, 이곳이 고향인 사람들도 사냥이나 카우보이로 소치 기를 하면 떠도는 곳, 그렇게 떠돌아야 살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와이오밍이다. 그와 함께 한 수많은 순간들 중에서도 이곳에서 함께한 순간은 풍경과 함께 사진의 한컷처럼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에 반해, 나와 함께 간 부탄인은 우리와 다르다. 그도 부탄에서 태어났으나 태생은 네팔인으로 부탄, 네팔, 인도 등을 오가며 교육받고 자라났다. 나에게 부탄은 조용하고 고요한 민족들이 사는 히말라야 산맥 아래의 작은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나의 그 인식을 단박에 깨준사람이 이 부탄인이다. 나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만큼 놀기 좋아하는 사람은 몇 명 본 적이 없다. 특히 인도 'Bollywood'음악을 틀어주는 클립에 가면 이 친구의 진가를 엿볼 수 있다. 온갖 영화 노래들에 맞춰 영화에 나오는 안무와 똑같이 춤을 추는데 나는 처음에는 이 친구가 부탄인이란 걸 믿지 못했다. 술도 엄청나게 마시고, 여자도 가리지 않고 사귀는 편이었다. 와이오밍은 그 친구의 나라 이미지로 생각하면 그와 어울리는 곳이나, 그의 성격이나 그의 행동에는 맞지 않는 곳 같았다. 그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이었다. '부탄'과 '도시 사람'이란 두 단 어가 얼마나 부조화적인가 생각해보면 '그'와 '와이오밍'도 얼마나 부조화적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살다 전통의 방식 그대로 중매결혼을 한 것을 보면 그렇게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도 가족과 전통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참 묘했다. 


우리는 3박 4일을 와이오밍의 옐로 스톤에서 보냈다. 휴화산이 만들어낸 광활한 호수와 굳은 용암들은 하얀색의 그 신비한 빛을 우리에게 내뿜었고, 쉴 새 없이 내뿜는 뜨거운 온천수와 연기들은 이곳이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는 것을 경고처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큰 화산 폭발이 일어날 것 같지만 전문가들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이곳이 폭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어떤 곳도 와이오밍의 옐로우스톤과 비견될 수 없다. 이곳은 장엄하다. 말 그대로 자연의 신비와 그 설명 불가능함을 유감없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차를 몰고 가다 아메리칸 들소 떼, 강 그리고 숲과 끝없이 펼쳐진 대지가 석양과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내려서 말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서 그렇게 말없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정으로 어떤 것의 아름다움을 이해한다면 긴 말은 필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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