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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스턴휴 Mar 30. 2022

일기-04

Wanderlust.05

사우디아라비아 부라이다시티 부근 2020년즈음...


인도인 운전사를 시켜 7시간을 달려 부라이다 시티에 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농업이 정말 활성화된 나라라고 하면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못할것이다. 상상속의 사막밖에 없던곳에 이렇게 푸르른 숲과 논밭들이라니..., 우리나라마트에서의 토종농산물들처럼 이곳도 사우디아라비아산 토종 소고기나 농산물들이 인기가 많다. 그중에서 으뜸가는것은 역시 대추야자이다. 꿀에 절인 대추야자는 이곳에서는 식후 차와 함께 곁들이는 국민디저트이다. 부라이다시티는 이 대추야자로 유명한 곳이다. 사람들은 또 믿지 못할것이다 만약 내가 이곳에 내사랑을 찾아 왔다고 말한다면 말이다... 


예약했던 호텔의 친절한 안내인을 따라 방을 안내받은 다음 몸을 뉘였다. 안내인의 히잡을 두르고 웃는 모습은 아름다웠고, 창문조차 없는 내방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이곳은 결혼증명서 없이는 남녀혼숙도 할수 없는 곳이니까, 밀월을 보내려면 이렇게 철저히 차단된곳이라야 할것이다. 이런곳에 사랑을 찾으러 왔다니, 그것도 한번도 본적 없는 인터넷에서만 말해본 사람을 믿고, 일은 내팽개치고, 정말 전형적인 정신빠진놈의 행태라 하겠다. 하지만 미친짓이라도 이런 미친짓이라면 나는 언제나 환영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런종류의 인간이므로, 일로 온 사우디에서 일은 내팽개치더라도 이 곳 여자들의 속내는 보고 싶다. 고로, 아무 연고도 없고, 아무런 아는 사람도 없이, 아무런 일도 없이, 흐릿한 그녀의 잔상만 믿고 이곳에 몸을 뉘이고 있는 내 기분은 지금 매우 묘하면서도 흥분된다. 


많은 사람들이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서 이곳 중동지역 여성들의 인권이 억압받는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단연코 말하건데,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같은 석유부국같은데서 그런건 완전한 오해다. 이곳 여성들도 다 똑같이 일하고, 사회활동을 하고, 운동을 하고, 목청을 높여 싸운다. 하지만 히잡이나 니캅 때문에 당신은 어느 여성의 얼굴도 쉽게 볼수는 없을것이다. 그런 부조화를 한번 생각해보면, 이 나라가 정말 묘한나라라는걸 알수 있다. 기도시간마다 큰 도시의 스피커에는 이슬람 사제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젊은 세대들의 행동이나 도시의 모습은 여타 선진국들과 별 다를게 없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가련한 여자, 내가 만나고자 하는 그녀는 이런 뉴스나 미디어의 편견에 꼭 들어맞는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다. 대학도 가지못했고, 자유연애는 억압당했으며, 집안에서도 짦은 옷은 입지 못하고, 집안의 남자들은 그녀를 집밖에 내보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종류의 정의감에 불타올랐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냥, 날 만난 하루는 즐겁게, 많이 웃게 해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 뿐이었다. 만나러 오겠다는 마음을 먹은것도 순전히 호기심 반 동정심 반이라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그녀가 교묘한 거짓말과 속임수를 통해 위험을 무릎쓰고 날 만나러 와야 했을것이 뻔히 보였으므로...


문자가 왔다. 그녀가 10분안에 호텔 정문에 도착한다고 한다. 옷에 냄새가 나는지 안나는지 확인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화장실 거울에 잠시 얼굴을 확인하고 슬슬 나갈 준비를 한다. 내가 긴장을 하고 있나? 그렇다. 나는 긴장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왜냐하면 난 이순간에도 그녀가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지 나를 속이려고 하는지 확실치 않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도시에 아무 연고도 일도 없다.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날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수 있는 일이고, 최악의 경우, 졸지간에 조국과 가족에게서 몇십만리는 떨어진곳에서 비명횡사 할수도 있는 노릇이다. 뭔가 뾰족한걸 들고 나가야 되나? 칼 비슷한거라도? 불안감이 점점 엄습한다. 묘하면서도 흥분된 기분은 묘하면서도 두려운 기분으로 전위된다. 아니다. 여기는 도시시내 한복판이다. 별일있겠어? 이렇게 될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완전한 빈손으로 지갑과 여권만 챙겨들고 내려간다. 안내인에게 눈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니캅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난 의심했던 내가 미안하기도 하고, 두려움과 의뭉스러움이 풀려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니캅사이로 웃는 두 눈이 보인다. 나는 쾌활하게 인사한다. 앗사알람 알레이쿰(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그녀는 더욱더 쾌활하게 답변한다. 와알레이쿰 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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