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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못하세요 테니스.

못해도 계속하는 테니스 게임 1

by 플린
정말 못하세요 테니스.

세상 충격이었다. 나름 몇년(사실을 밝히기 두렵기에 미지수로 해두고 싶다.) 테니스를 배웠는데, 처음 결성된 어느 코치님의 레슨자 정기게임에서 이 얘길 기어코 듣고 말았다. A/B/C로 조를 나눌 때 테린이조인 C로 갔어야 했는데 레벨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가장 최상의 실력자들과 복식 게임을 하게 됐다.

한 게임이 끝나고, 계속 나로 인해 힘들게 뛰어다닌 파트너분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에 "죄송해요. 제가 너무 못쳐서..." 라고 하자 이날 처음 만난 나의 파트너 분은 (몇개월 알고 지낸 결과 매너도 좋고 유머감각도 있고 여러모로 존경스러운 어르신이었다) 쿨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못하신다고.

그러고 나서 1년이 좀 넘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 테니스를 잘 못친다. 애초에 나에겐 운동신경이란 없다. 운동이란 그저 살기 위해 하는 생존수단이지 스포츠를 해볼 생각은 걸음마 이후 30년이 넘도록 해본 적이 없었다. 기초도 안되는데 스포츠는 무슨. 어느 정도냐면 초중고 시절 체력장을 하면 5급은 고정값이었고, 릴레이 경주를 할 때 바톤을 주러 전력으로 뛰는 나에게 다음 주자는 이렇게 말했다.

걷지 말고 뛰라고!

체육에 도통 소질이 없던 난 학생주임이자 중학교 체육선생님에게 찍혀 체육부장으로 지목당했다. 운동을 못하니 시험점수를 잘 받으려면 일이라도 하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주전자를 들고 피구 코트도 그리고, 운동 소품들도 챙기고, 체육대회 준비도 하면서 나름 운동을 못하는 스스로의 죄책감을 체육부장 심부름으로 풀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그래도 잘하는게 있었다. 공놀이. 기초체력은 없는데 승부욕은 있어서 피구, 배구, 배드민턴 게임은 곧 잘 했다. 그래서 체육대회 때 우리반 배구선수 중 1명으로 뽑히기도 했었다. 체육을 너무 못하는데 그나마 공놀이를 할 땐 껴주는 곳도 있고, 점수도 잘 나오니 이때부터 난 공놀이를 좋아하게 됐다. 방학땐 스쿼시도 배웠다. 하지만 당연히 기초체력도 없고 운동신경도 부족하니 공놀이를 좋아해도 한계는 있는 법. 다른 체육 종목을 워낙 못하는데 그나마 잘하는게 공놀이였지 상대평가로는 왠만큼 운동하는 친구들에겐 쨉도 안됐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나니, 자발적으로 찾지 않으면 공놀이를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직업적 꿈을 위한 동아리 활동, 학점 관리, 취업준비 등으로 스포츠는 커녕 운동 자체가 뒷전이었다. 20대 초반엔 운동을 안해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기분이 그랬다. 아니, 내 몸이 그 땐 그랬다.

취업을 하고 20대 후반이 되니 슬슬 몸이 반항을 하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다. 살기 위해 운동이란걸 해봐야겠다고 다짐한게. 요가, 필라테스, PT등 다이어트와 근육을 위한 운동에 투자를 했다. 당연히 재미는 없었다. 내가 나를 이겨서 무엇하랴. 하지만 운동을 하면 체력이 플러스(+)가 아니라 유지였고 운동을 안하면 마이너스(-)였기에 억지로 꾸역꾸역 주 2회는 채워보려고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해와 같이 여행을 하던 난, 이탈리아 로마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 축구를 사랑하는 로마인 친구가 로마의 축구경기장을 보여준다기에 Stadio Olimpico 찾아갔다가, 야외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치는 주민들을 보게 됐다. (주민이 아니라 선수일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 테니스를 치는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로마 친구에게 (영어로..) 얘기했다.

사실, 나도 테니스가 치고 싶었어.

왠지, 계속 테니스의 로망을 안고 살아왔던 기분이 들었다.

"한국 가서 치면 되지~"

별일 아니라는 듯 얘기한 그 친구의 말에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겼다. 난 테니스는 왠지 잘 칠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자신감. 그렇게 한국에 와서 막상 레슨을 배우려니 그새 자신감이 사라졌다. 테니스레슨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던 그 때. 자매처럼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본인도 테니스를 배우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레슨을 알아봤고,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테니스란걸 배우게 됐다.


어우, 테니스 잘하시네요~ 좀 더 일찍 배웠으면 선수했을 뻔 했어요.


레슨 1개월 차. 그 땐 선생님의 그 말이 진심인 줄 알았다. 마냥 신나고 하루하루 공을 치는 새로운 자세를 익혀가는 내 모습이 뿌듯했다. 실내 레슨장에서 선생님이 던져주는 공만 치고 있을 때.. 그때가 나의 전성기였다. 테니스코트에서 본격적으로 'GAME' 이란걸 하는 순간 나는 운동바보였음을 실감했고, 그렇게 매일매일 몇년 째 정말 못하는 테니스를 계속 하고 있다.

라켓도 없던 시절, 나의 첫 레슨장
태어나 처음 구매해본 나의 라켓.
나의 테니스삶에 시련이 찾아온건 테니스장을 나가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이렇게 못하는데 테니스를 하는게 맞을까.

슬럼프라는게 너무 못해도 올 수 있음을 테니스를 하면서 깨달았다. 나만의 슬럼프 기간을 겪으며 한동안 (한 1년...?) 테니스를 접었다. 못하는 나를 이끌고 같이 테니스를 쳐준 분들에게 더이상 민폐를 주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친한 분이 회사 동호회로 테니스 동호회를 만들겠다며 참여를 종용하는 바람에, 억지로 테니스 라켓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렇게 못치는 테니스의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못치면 잘치고 싶어서라도 열심히 할텐데, 애초에 운동에 재능이 없으니, 열심히했는데 계속 못치면 더 바보같을까봐.. 조금 덜 바보같아 보이려고 테린이의 길을 계속 걸었다. 동호회 회원들에게 민폐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그러다 내 짧은 테린이의 삶에 아주 큰 시련이 찾아왔다. 그것은 내가 테니스를 잘쳐보겠다는 욕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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